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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마크맨' 25시] '경상도 남자'의 제주 유세 "잘도 반갑수다"

  • 정치 | 2017-04-19 03:00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8일 제주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제주=오경희 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8일 제주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제주=오경희 기자

'장미 대선'이 시작됐습니다. 5월 9일 국민은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이번 선거는 기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후보도 많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물론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주요 대권주자입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취재 기자들도 바빠집니다. 후보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보들과 일정을 함께하는 기자를 '마크맨'이라고합니다. <더팩트> 기자들도 각 후보별 마크맨들이 낮밤없이 취재 중입니다. '마크맨 25시'는 취재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가감없이 풀어쓰는 코너입니다. 각 후보 일정을 취재하며 마크맨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취재를 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 | 제주=오경희 기자] 눈 뜨니 비행기 안이다. 18일 오전 6시 35분, 제주 상공을 향해 날고 있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17일), '대구→대전→경기 수원→서울'을 누비는 강행군에 이어 이튿날인 이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제주와 전북 전주·광주를 유세지로 선택했다. 연일 거리로만 2170km다. 지역정치를 넘는 '전국구 대통령'을 목표로 한 문 후보의 의지다. 덕분에 마크맨은 어디서든 '헤벌레~' 입 벌리고 자는 게 일상이다.

오전 7시 45분, 입가에 침 자국을 황급히 추스른다. 잠결에 '집 나간 정신'도 챙긴다. 착륙. '평화의 땅' 제주도다. 속칭 필자의 '나와바리(내부 용어로 출입처 등 일종의 구역, 근거지)'다.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 후보가 어떤 발언으로 지지를 호소할지 다른 날보다 좀 더 궁금했다. 그러나 지리적 접근성 탓인지, 상대적 관심도가 떨어지는 탓인지. 제주 취재단의 규모는 전날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공항 게이트를 나와 취재버스에 오른다. 30분여를 달려 멈춘 곳은 제주4·3평화공원이다. 4·3사건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과 제주도민의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 인권 기념공원이다. 문 후보는 오전 9시, 첫 행선지로 이곳을 택했다. 지난 3일 당 경선일정과 겹쳐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한 대신 대선후보 선출 후 방문키로 했던 약속한 바 있다.

18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위령탑을 참배한 문 후보와 일행./제주=오경희 기자
18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위령탑을 참배한 문 후보와 일행./제주=오경희 기자

제주4·3사건은 제주도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아픔의 역사다. 매년 4월 3일 제주의 한 마을엔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 한날한시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의 제사를 지낸다. 미 군정기에 제주도에서 발생한 제주4·3사건은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제주4·3연구소는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도 사건 발생 50년이 지나도록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다가, 2000년 1월 12일 제주4·3특별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비로소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에 착수해 2003년 정부차원의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됐고, 노무현 대통령의 4·3에 대한 공식사과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69년이 지난 2017년 현재, 여전히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규명과 완전한 명예회복 등이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신 문 후보는 이런 도민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4·3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을 참배한 데 이어 오전 10시께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제주비전'을 발표할 때도 '4·3'을 제일 먼저 언급했다. 그는 "집권 시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며,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완전히 이뤄지도록 필요한 '4·3 특별법 개정' 등 입법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내년 70주년 4·3 추념식에 대통령으로서 참석하겠다"고도 했다.

문 후보가 제주사투리로
문 후보가 제주사투리로 "자주 못 찾아와 미안하우다"라고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제주=오경희 기자

"안녕하십니까. 문재인입니다. 자주 못 찾아와 미안하우다 잘도 반갑수다."

분위기를 바꿔, '경상도(경남 거제) 출신'의 문 후보는 '제주 사투리'로 민심을 공략하기도 했다. 40여분 뒤, 제주시내 전통시장에 준비한 유세차량에 오른 문 후보의 입에선 사투리가 흘러나온다. '학실하게(확실하게)'가 더 자연스러운 문 후보의 '어색한 제주 사투리 실력'이지만, 도민들과 지지자들도 반긴다. 약 700여명(주최측 추산)이 몰렸다. 앞서 도민의방에서도 같은 인사말을 건넸다. 취재버스 안에선 "잘도?가 매우?"냐며 사투리 번역(?)에 진땀이다.

물론 필자는 '번역기'가 필요없다. '훗.' 내심 '혼자만 알아듣는' 묘한 쾌감도 느낀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제주도가 고향이라고 하면 "사투리 좀 해봐"란 말이 지긋지긋했는데도 말이다. 이래서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그 '지역 맞춤형 사투리'로 연설을 하는가보다. 문 후보는 전날 대구에서도 "대구가 일어서면, 세상이 디비진다"라며 사투리로 지지를 호소했다.

'사투리'는 문 후보 뿐만 아니라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 등도 지역 유세 및 TV토론회 등에서 유권자들에게 친밀감 형성을 위해 사용하는 전략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미디어 선거전에서 '박근혜가 바꾸는 세상-사투리 편'을 제작하면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다만, 재밌는 사실이 있다. 앞으로도 대선 유세 과정에서 '전국구 사투리'를 구사하는(할) 후보들의 고향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란 점이다. 이렇든 저렇든, 반나절만에 다시 비행기 안이다. 고향집 한 번 못 가보고.

'이러려고 기자했나. 흑.'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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