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원엽 기자] 어느새 약 한 달이 지났다. 기분 탓일까. 브라질로 떠나기 전 가진 자신감에 넘쳤던 그는 다소 의기소침해 보였다. '많이 차분해진 것' 같다고 물어보니, 귀국 후 재활과 체육관 운영으로 피곤한 탓이었다. '운명의 그 날' 경기에 대한 진한 아쉬움은 숨길 수 없었지만, '코리안 좀비' 정찬성(26·코리안좀비MMA)은 분명 다시 힘을 내 챔피언에 오를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었다. 체육관 벽에 여전히 걸려 있는 '알도와 타이틀전 홍보 포스터'처럼 모든 게 그대로였다. 상황만 조금 달라질 뿐이었다.
<더팩트>은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코리안좀비 종합격투기 체육관'을 찾았다. 지난달 4일(한국시각) 리우데자네이루 HSBC 아레나에서 열린 UFC163 페더급 챔피언 타이틀전 조제 알도(27·브라질)와 일전에서 오른쪽 어깨가 빠지는 '불의의 부상'으로 4라운드 TKO패배를 당한 정찬성은 "이제 괜찮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 경기를 하다 보면 질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10년 동안 알도만 보고 싸웠는데, 져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다. 그것보다 여기서 포기할 게 아니기에, 다시 도전하는 게 중요하다"며 인사를 건넸다. "1라운드 때 알도의 발등이 안 부러졌어야 했다. 로우킥만 기다렸다. 대비를 정말 다양하게 많이했는데, 왜 안 차지라는 생각만 했다"는 등 여전히 당시 경기 내용을 회상하며, 몸을 들썩였지만, 후회와 아쉬움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다.

정찬성은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수술한 왼쪽 눈과 오른쪽 어깨는 점점 나아지고 있으나, 눈 주변은 여전히 멍이 들어 있고 사물도 선명하게 보기 힘들다. 오른쪽 어깨는 돌리거나 무거운 것을 들지 못 한다.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하고 있는 선수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정찬성의 재활 기간은 약 10개월로 예상되며, 몸 상태가 완벽해질 때까지 무리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정말 미치겠다. 운동하고 싶어 죽겠다. 먹고 싶은 피자가 눈앞에 있는데, 매일 닭가슴살만 먹어야 하는 느낌이랄까?(웃음) 지금 선수들과 엄청나게 같이 뛰고 싶다. 재활이 끝나면 다시 제대로 운동할 거다. 3년 안에 타이틀전에 다시 도전할 생각인데, 두려움은 없다. 알도와 싸우기 위해 10년 기다렸는데, 3년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의지를 다졌다. 그는 천상 파이터였다.
정찬성은 재활 훈련을 하며 '관장' 임무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4월 고심 끝에 약 5년간 몸담은 코리안탑팀을 떠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체육관에 혼을 쏟고 있다. 브라질에 다녀온 뒤에는 친구와 동업을 끝내고 본격적인 운영에 나섰다. 부상 탓에 당장 운동을 할 수 없고, 누구보다 이 체육관에 애착이 가기 때문이다. "아침 11시부터 밤 11시까지. 거의 체육관에서 산다"는 그는 "내 이름 걸고 하는 건데, 나 믿고 오는 사람들인데, 책임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재밌게 하고 있다. 일반인 대상으로는 확실히 잘 가르치는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40여 명의 일반인과 10명 정도 되는 후배 선수들은 "운동은 힘들 게 해야 한다는 지도 철학으로 좀 빡세게 가르친다(웃음)"는 정찬성의 '고집' 덕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고, 바로 옆에서 스파링하던 파이터 서두원은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정찬성 스타일 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다"며 씩 웃었다.

"관장 정찬성은 많이 미숙하다. 마음이 여리고 운동밖에 모른다." 그의 옆에서 줄곧 체육관 일을 돕고 있는 1년여 사귄 3살 연상의 여자 친구의 말이다. 어쩌면 정찬성은 관장의 옷이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코리안 좀비'는 고된 관장 경험으로 더욱 성숙한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사람과 관계가 가장 힘들다"는 그의 말대로 경험을 쌓으며 '더 큰 어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일이 많지만, 특히 선수들이 참 제 마음 대로 안 된다"며 혀를 내두른 그는 "예전에 저를 가르치신 관장님들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들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가끔은 선수만 했을 때가 그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제가 관장을 하지 않았다면, 그 시절이 소중하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장 일은, 소중한 선수 생활을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빨리 결정을 내려 정말 다행"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계획보다 일찍 관장의 길을 걷고 있는 정찬성. 그는 비록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 뒤 험난한 재활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여전히 챔피언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이 넘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팬들도 보셨겠지만, 알도와 싸운 저는 케이지 위에서 분명히 느꼈다"는 그는 "알도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가능성을 봤다. 그래서 포기를 못하겠다"고 말했다. 코리안 좀비의 도전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wannabe2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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