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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52>-박준형] 12년 만의 성공 귀환 '개콘 시조새'

  • 오피니언 | 2019-08-25 14:31
'개그맏형' 박준형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늘 후배들 앞에 솔선수범한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후배들의 자발적 마음을 얻어야 비로소 완벽한 호흡을 이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선화 기자
'개그맏형' 박준형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늘 후배들 앞에 솔선수범한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후배들의 자발적 마음을 얻어야 비로소 완벽한 호흡을 이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선화 기자

'마빡이' 코너 후 12년 만에 복귀 후 인기, "부활의 불쏘시개 되겠다"

[더팩트|강일홍 기자] 박준형(45)은 개그맨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개콘세대' 좌장이다. 갈갈이 삼형제에서 '갈갈이' '강철앞니'로 활동한 개그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이름보다는 '갈갈이'란 별칭이 더 팬들에게 익숙하다. 무, 수박, 파인애플, 멜론, 호박 등 과일 채소는 뭐든 갈았고 나중에는 페트병도 한방에 뚫었다.

그는 어머니가 김장 담그는 것을 보고 재미삼아 깍두기무를 앞니로 갈아보다가 특별한 개그 본능을 깨우쳤다고 한다. 하지만 개그 공채에서는 8번이나 낙방을 거듭한 끝에 8전 9기(97년 KBS 개그맨 13기)로 겨우 합격했다. 힘들고 고단한 과정을 거친 만큼 막상 관문을 통과하자 그는 훨훨 날았다.

박준형은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한 프로그램만으로 KBS 연예대상(2003년)을 수상한 최후의 인물로 남아있다. '갈갈이와 생활사투리' '우비 삼남매' 등 인기 코너로 폭풍처럼 히트를 쳤고, 그 기세를 몰아 당시까지 연예대상을 싹쓸이 해온 MC 중심 예능인들의 독주를 막았다.

그 박준형이 올해 20주년(1000회)을 맞은 개콘 무대에 돌아왔다. 지난 11일 그가 첫 선을 보인 '2019 생활사투리'는 코너 시청률 1위에 올랐다. 명불허전, 시공 초월의 개그감을 발산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3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진행됐다.

-오랜만에 복귀했다. 얼마 만인가. 어떻게 지냈는지 우선 근황이 궁금하다.

꼭 12년 만이네요. 후배 정종철과 콤비를 이룬 '마빡이' 코너가 마지막이에요. 당시 분위기상 저는 웃으면서 '마지막으로 무를 갈고 가겠다'고 떠났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단절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죠. 금방 다시 불러줄 걸로 기대했는데 그 사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졌어요. 떠나 있는 동안 생각만 해도 늘 가슴이 저리고 아팠죠. '개콘'은 갓 데뷔한 신인 때부터 시작해 개그맨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린 무대였어요.

박준형은 2007년 '마빡이'(정종철)와 '까다로운 변선생'(변기수)을 끝으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개콘무대를 떠났다. 정확하게는 자의반 타의반이다. 후배 정종철이 방송사와 보이지 않는 알력이 생겼고, 외면할 수 없는 선후배 간 끈끈한 의리의 역학관계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친정 KBS를 떠나야 했고, 이후 MBC(개그야) SBS(개그투나잇), tvN(코빅) 등을 전전하게 된다. 지금도 개그맨 후배들은 당시를 떠올리며 "준형이 형은 후배들을 챙기고 의리를 좇다 스스로 궁지에 몰린 멋진 선배"라고 말한다.

박준형은
박준형은 "다시 기회가 주어진 만큼 선배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개콘' 부활의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3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진행됐다. /이선화 기자

-이미 후배들이 장악한 '개그콘서트'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이번 복귀에 남다른 소감이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여러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는 컴백이에요. 우선 못다 한 개그열정을 다시 불태울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에 무한 행복감을 느낍니다. '개콘'을 떠난 이후 늘 허전한 아쉬움을 달래야 했거든요. 벌써 3주째가 됐는데 후배들과 개그소재를 놓고 아이디어 회의 하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정말 몰랐어요. 덕분에 제작진과 '개콘' 전성기를 함께한 멤버로서 자부심도 들고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으니 '개콘 맏형'으로서 침체된 분위기를 변화시킬 색다른 뭔가를 보여줘야죠.

'개콘'을 떠난 이후 그는 2009년 10주년(500회) 특집과 올해 20주년 특집(1000회)에 딱 두 번 출연했다. 오랜 목마름의 갈증은 복귀 코너 '2019 생활사투리'에서 확인됐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1일 방송된 복귀 첫회에서 '생활사투리'는 6.0%를 기록하며 11개 코너 중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또 2회부터는 '불후의 명곡'을 패러디한 '전설에 먹칠하다, 불후의 분장'으로 재미를 더하며 강성범 안상태 등 개콘 전설들이 줄줄이 복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후배들로부터 여전히 '개콘 시조새'로 불린다고 들었다.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개콘' 부활은 개그맨들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시청률 20~30%를 찍으며 승승장구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침체됐어요. 웃음 코드와 트렌드가 바뀌면서 극복해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2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해온 '개콘'이 무너진다면 사실상 개그 명맥도 끊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시조새'라는 호칭은 과분하지만 그만큼 선배 역할을 든든히 해달라는 요구라고 믿어요. 다시 한번 심기일전해 부활의 불쏘시개가 되려고 합니다.

박준형은 대학로에 '갈갈이패밀리'를 설립해 지난해까지 운영했다. 20년 가까이 소극장형 무대를 진두지휘하며 200여명의 개그맨들을 배출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개콘'을 비롯해 '개그야' '개그투나잇' '코빅' 등에서 활동중이다. 그가 개그 대부 또는 개그 맏형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대학로에서 꿋꿋이 버틴 동력은 전국에서 몰려든 끼 많은 친구들의 개그열정이었다"면서 "인기 부침이나 돈벌이와 무관하게 후배들한테 설 무대와 공간을 만들어줬다는 자부심은 갖게 됐다"고 말했다.

"무대를 지켜준 후배들한테 고맙고 미안하죠." 12년 만에 '개그콘서트'에 복귀한 박준형은 "개그소재를 놓고 아이디어 회의 하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이선화 기자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그만큼 긴 공백기를 거치며 마음고생도 많았다고 들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지나고 보니 인기는 신기루더라고요. 화려한 모습으로 제 주변에 떠 있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 끝내 붙잡지는 못했으니까요. 잘 나갈 때 초심을 잃지 말고 겸손하란 선배들의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어요. 가장 견디기 힘들 때는 팬들이 '정말 좋아하는 분인데 왜 TV엔 안 나오냐'며 위로하고 걱정 해줄 때더군요. 누군 안 나가고 싶겠냐고요. 정신없이 카메라 조명을 받고 있을 때는 몰랐죠. 다행인 건 긴 공백이 깊은 마음의 상처가 됐지만, 쉬면서 뒤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어요.

박준형은 개그가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뼈그맨'(뼛속까지 개그맨)이다. 그는 개그무대를 떠나 있는 동안 '진정한 대중스타의 삶과 의미'를 알았다고 했다.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기쁨이고 행복인지도 절실히 느꼈다. 그는 "제가 만일 기복 없이 계속 주목받는 연예인으로 제 위치를 지켰다면 이런 소중한 의미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개그 무대로 다시 돌아온 그는 요즘 인기 절정일 때보다 훨씬 값지고 신나는 일상을 즐기고 있다.

-복귀 후 '개콘'에서 새로 선보인 코너는 10년여 전 인기를 누린 '생활사투리'의 리바이벌이다. 멤버들도 이전과 일부 달라졌다.

그렇죠, 생활사투리 2019년 버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김)시덕(경상도 사투리)이와 (이)재훈(전라도 사투리)이는 애초 저와 호흡을 맞춰온 원년멤버예요. 두 후배들이 없으면 저 혼자서는 이 코너의 색깔을 낼 수 없어요. (배)정근이는 갈갈이패밀리 출신인데 충청도 사투리의 달인이죠. 제가 만약 이 코너를 언젠가 다시 하게 된다면 반드시 기용하겠다고 약속한 재주꾼입니다. 옥동자 역할을 맡아 전체 구성을 정리하는 (김)성원이도 아주 오래전부터 눈여겨봐온 친구예요.

박준형은 매사 말이 아닌 행동으로 후배들 앞에 솔선수범한다고 한다. 선배가 무작정 이끌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후배들의 자발적 마음을 얻어야 비로소 완벽한 호흡을 이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시작부터 후배들과 손발이 척척 맞아 신난다"면서도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옥동자' 정종철의 공백"이라고 했다. 그는 "종철이는 정말 개그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재간둥인데 요샌 요리와 목공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종철은 SNS와 유튜브 등 1인미디어를 통해 홀로 활동하고 있다.

박준형은
박준형은 "비록 개그무대는 떠나 있었지만 라디오 청취자들과 호흡하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오른쪽은 MBC 표준FM '박준형 정경미의 2시만세'의 정경미. /박준형 제공, 더팩트 DB

-TV에서는 모습을 뜸하게 비쳤지만 라디오 DJ로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지 않았나. 청취자들한테는 꽤 입소문이 나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맞습니다. 6년째 라디오 DJ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비록 개그무대는 떠나 있었지만 라디오 청취자들과 호흡하며 위안을 삼을 수 있었죠. 라디오는 TV와 또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매일 생방송을 하며 바쁘게 지내다 보면 개그 할 때보다 오히려 '진정한 방송인이 됐다'는 보람도 느껴요. 그러고 보면 형식이 좀 바뀌었을 뿐 개그를 완전히 등지고 산 것도 아니에요. 청취자들과 교감하다 보면 시시때때로 개그와 만나고 있는 저를 발견하거든요.

박준형은 후배 개그우먼 정경미와 함께 MBC 표준FM '박준형 정경미의 2시만세'(95.9MHz, 월~금)를 맡고 있다. MBC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선 간판 프로그램 '여성시대'에 이어 당당히 청취율 2위다. 그는 "음악과 콩트는 기본이고 뉴스전달과 청취자 인터뷰 등 세상살이의 모든 것을 조망하고 분석하고 들여다보게 되니 순발력과 시야가 더 넓어졌다"면서 "라디오야말로 방송의 모든 장르를 망라한 토털미디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고 했다.

"기회를 주신 더팩트 스페셜인터뷰, 진짜 영광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박준형이 더팩트 편집국 앞에서 특유의 여유로운 포즈를 취했다. /이선화 기자

-누구한테나 신인시절은 있고, 혹독하다. 전통적으로 개그계는 선후배 간 질서가 엄격하기로 소문 나 있는데 선배로서 조언해줄 말이 있다면.

조언이라니요, 이젠 후배들한테 제가 충고를 받아야죠. 예전엔 일방적 가르침이었다면 지금은 쌍방향 소통입니다. 과거처럼 수직적 사고 방식에 몰입돼선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요. 개그계의 새로운 질서는 일방적 독선이 아닌 예의와 존중, 사랑, 보살핌 등 선후배 간 돈독한 유대감이어야 합니다. 개그는 각자 자유분방한 가운데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게 돼 있어요. 다만 한 가지 후배들도 꼭 명심해야할 부분은 뼈를 깎는 자기 노력없이 그냥 얻어지는 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박준형의 초기 활동은 '쇼 파워비디오'에서 신인 개그맨들과 거리로 나가 행인들을 즉석으로 웃겨주는 코너의 주 진행자 역할이었다. 또 '개콘'에서 뜨기 전까지 '아침마당' 막간코너 리포터로 주부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누구보다 신인시절의 애환을 깊숙이 경험한 세대다. 그는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다짐했지만 인기가 폭발하니 저도 모르게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을 잊게 되더라"면서 "이제부터라도 오직 겸손과 배려를 금과옥조로 생활화하겠다"고 말했다.

"앗, 이런 모습 낯선가요?" 박준형은 종종 여행을 떠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노력을 한다고 했다. 사진은 캐나다 여행 중 아내 김지혜와 망중한. /김지혜 제공, 더팩트 DB

박준형의 인생프로그램으로는 '개콘'을 빼놓을 수 없다. 이승환 정종철과 함께 '갈갈이 삼형제' 코너를 통해 앞니로 무를 가는 '갈갈이' 캐릭터는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개콘' 인기코너의 상징으로 각인돼 있을 정도다. 덩달아 개콘 후배들 사이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선배'로 꼽히는 계기가 됐다.

박준형의 개그 동력은 직접 개발한 '극장식 개그시스템'이다. 대학로에 갈갈이패밀리를 설립한 뒤 다양한 스타일의 개그소재를 소극장에서 실험해보고 첨삭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시청자들이 원하는 웃음코드를 찾아냈다. 이런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후배들을 키워내며 개그 맏형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에겐 '생활사투리' '사랑의 가족' '골목대장 마빡이' 등 전국을 뒤집을 정도로 히트를 기록한 익살 코너가 유독 많았다. 연예대상과 최우수작품상 수상 횟수의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박준형은 "최근 트로트 붐이 일듯 개그 프로그램도 언제든 활화산처럼 타오를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개그 대부다운 면모를 잃지 않았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천생 뼈그맨'이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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