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기란 배우에게 더한 시나리오도 할 수 있겠다는 인식 심어줄 것 같다"
[더팩트|권혁기 기자] 국민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안성기(64)가 '행운'이라고 생각할만한 작품이 있을까? 예상치 못한 배역을 제안받았을 때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행운'이라는 표현을 쓸만큼 영화 '사냥'(감독 이우철, 제작 빅스톤픽쳐스)은 안성기에게 특별한 작품이다.
내년이면 데뷔 60년차를 맞이하는 안성기를 지난 24일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만나 그 '행운'에 대한 썰을 풀었다. 인터뷰에 임하는 안성기는 커피 '맥심' 광고에 나오는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영화의 여운은 아직 남아 있었다. "영화에서 잔근육이 정말 발달한 게 눈에 보였다"고 말하자 호탕하게 웃었다.
"아주 잘 보셨네요.(웃음) 잔근육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고 오래 준비를 했어요. 운동을 시작한 게 한 40년 정도 됐죠. 그래서 계속 비슷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죠. 큰 변화가 없어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 편집이 잘 돼 정말 많이 뛴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정말 행복하게 달렸어요. 고통스럽지 않았죠. 평소 운동하던 것처럼 했습니다. 갑자기 준비하려면 오히려 육체적으로 힘들어요."
'사냥'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다.
"모든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결정을 하죠. 마음이 움직였는가. 그 인물에 대한 상상력이 생기는가. 그러면 그 작품을 해야죠. 그렇게 '사냥'을 선택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이런 시나리오를 나한테?'라고 생각했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김한민 감독이 시나리오를 줬어요. 그래서 작년에 만나 출연 결정을 했는데 들었던 생각이 '이런 행운이 나한테 오다니'였어요. 새로운 도전이었고, 젊을 때는 못했던 액션라고 생각했죠. (출연작 중에)가장 많은 액션이었어요. 준비해온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까지 들었죠. 앞으로는 '더 험한 역할도 안성기가 충분히 하겠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다양한 작품 섭외가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도 하고 있습니다.(웃음)"

안성기를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 중에 하나가 '얼굴에서도 그 배역이 느껴진다'였다. 분명 나이보다 동안이지만 적절하게 드리워진 주름은 안성기의 연기 인생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사냥'에서는 주름이 더욱 부각된다. 험한 산길을 달리는 사냥꾼 문기성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지금은 주름이 덜 보이는데, 메이크업을 하면 더 확실하게 보여 문기성이란 캐릭터를 더욱 처절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촬영 때는 '주름이 너무 잘 보이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인물과 가까워지기 위해 그런 것"이라며 "저녁에 씻고 다음날 아침 다시 손에 때를 입혀 문기성을 만들지만, 현장에 나가면 연기 욕심 때문에 얼굴에 주름은 생각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안성기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그가 맡은 늙은 사냥꾼 문기성의 전사(前史) 때문이다. 문기성은 무진에서 일어난 대규모 탄광 붕괴 사고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이다. 반장으로 광부들을 이끌었던 그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이다. 어찌보면 '사냥'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다.
"스스로 열어놓지 않고 닫힌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보니 굉장히 어두운 그림자가 얼굴에 있을 것 같았다. 그 사람의 웃음도 '허허'로울 것 같았다. 어떤 액션이나 달리기를 하는 부분에서도 그 사람의 어두운 내면이 늘, 그 사람의 일부처럼 보여져야겠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고뇌하는 람보'처럼 보이고자 했다."

문기성을 완벽하게 분석한 안성기는 후배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한예리와 연기 호흡은 정말 좋았죠. 한예리가 양순이라는 인물에 집중을 했기 때문에 저도 기성이라는 인물에 충실할 수 있었어요. 하기 어려운 강원도 사투리도 해야하고, 다른 배역보다 집중이 필요한 역할인데 정말 뛰어났죠. 특히 가벼워서 고마웠어요.(웃음) 우리 한국영화의 힘에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조연들의 연기력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의 힘을 느끼게 하고 완성도를 높이고 있죠. 처음 보는 친구인데 '뭐 그리 잘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우리 엽사 후배들도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해냈죠. CG(컴퓨터그래픽)나 미술 분장도 진보를 해왔지만 연기력 역시 그랬다고 봐요. 예전에는 주연배우만 잘하면 된다고 했는데 요즘은 보조출연자들도 연기를 잘하죠."
'사냥'에 대한 애정을 듬뿍 느끼게 한 안성기는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빛을 못 받는 배우는 힘이 드는 게 현실"이라며 "그래도 인정을 받고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다면 배우만큼 좋은 직업도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인물을 만나고, 여러 스태프와 배우를 만나는 것 자체가 여행과 같다.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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