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보다 '연기자'로 불리길 원하는 천생 배우 박근형
"연기 스승님이 그랬어요. 배우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연기하는 기술보다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먼저 배웠다는 70대 노신사는 손녀 뻘되는 여기자를 마주하자 꼿꼿한 허리를 숙여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했다. 재빨리 고개를 숙이지 못한 게 민망해 서둘러 "안녕하세요. 선생님"하고 대답했다.
배우 박근형(75). 반세기를 연기만 하고 살아온 그는 20대 여기자에게 무언가 교육한 적 없지만, 인생의 선배이자 어르신은 확실하다. 그래서 '선생님'이란 호칭이 어색하거나 간지럽지않다.
따뜻한 봄날이 기분좋은 3월 마지막 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꽃할배' 박근형을 만났다. 박근형은 영화 '장수상회' 포스터 중앙에 박힌 자신의 사진이 여전히 믿기질 않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서들 앉아요.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오늘(9일) 개봉하는 '장수상회'(감독 강제규, 제작 빅픽쳐, 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출한 강제규 감독의 신작으로 70대 노년의 로맨스를 담은 작품이다.
박근형은 장수마트에서 일하는 김성칠 역을 맡았다. 그가 연기하는 성칠은 해병대 출신에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고집불통 할아버지. 그런 성칠에게 70평생에 파격적인 변화가 생기는데 앞집에 '천사표' 꽃집 할머니 금님(윤여정 분)이 이사를 온 일이다. 평생을 '꼬장꼬장'하게 살아온 성칠에게 비로소 '봄날'이 찾아온다.
영화의 소재가 성칠과 금님의 로맨스인 만큼 박근형이 작품의 7할을 끌고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형은 자신을 중심에 둔 이번 작품을 두고 '꿈같은 시간'이라고 묘사했다.
"강제규 감독은 '거장'아닙니까. 그런 감독님 작품에 내가 출연했다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장수상회' 시나리오를 본 순간부터 정말 욕심이 났어요. 감독님도 믿음이 갔고 이야기만 놓고 봐도 힘이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여주인공이 윤여정 씨란게 저에게 이 작품을 더욱 갈망하게 했습니다(웃음)."

누구보다 겸손하게 '장수상회'에 출연한 감회를 털어놓는 '노신사'는 현장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느낌이다. 촬영장에서 있던 에피소드를 쉼없이 털어놓으며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짓는다.
"윤여정 배우야 워낙 영리하지 않습니까. 별명이 '윤종달'이였죠. 종달새처럼 재잘재잘 말하는데 듣기도 좋고 하나같이 맞는 말이에요. 윤여정 씨처럼 솔직하게 말하면서 동시에 유쾌한 느낌을 주는 언변을 가진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같이 연기하면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어서 정말 편했어요. 젊은 배우들도 마찬가지. 정말 잘해요. 현장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어요."

상대의 장점을 콕콕 짚어내는 50년 배우의 겸손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남의 단점만 귀신같이 찾아내는 자신이 생각나 부끄러움이 앞선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 힘에 부치지 않느냐고 넌지시 운을 떼며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자 박근형의 인자한 미소가 대답을 대신한다.
"왜 힘들지 않나요. 힘에 부칠 때가 있지요. 그래서 예전엔 인터뷰도 잘 안 했어요. 사람들을 만나서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뭔가가 없었거든요.최근에서야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그래요. '배우 박근형'에게 확신이 생겼거든요. 대단한 건 아니고 내가 연기를 할 때 사람을 중심에 두고 한다는 것, 그거죠. 어떤 직업이든 그 중심에 사람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어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연기한다는 박근형은 처음 연극무대에 섰던 1950년대 후반을 회상했다. 연기 스승이었던 시나리오 작가 라소운이 그에게 처음 가르친 건 연기이론도, 시나리오 해석도 아니었다.
"사람을 중시하고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가장 먼저 배운 게 그건데 여전히 배우는 중이죠(웃음). '장수상회'도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삶보다 죽음이 더 친근한 70대 성칠이와 금님이를 통해 많은 분이 가족의 소중함,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amysung@tf.co.kr]
[연예팀ㅣ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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