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替認知·Change)] '박원순 미투 의혹', 진상 조사는 당연하다

  • 사회 | 2020-07-14 17:00
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 3선 서울시장을 거쳐 여권의 유력 대통령 후보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충격적인 퇴장과 함께 미투 의혹에 휩싸여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 시장/더팩트 DB
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 3선 서울시장을 거쳐 여권의 유력 대통령 후보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충격적인 퇴장과 함께 미투 의혹에 휩싸여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 시장/더팩트 DB

'하나의 악(惡)으로 그 선(善)을 잊지 말고, 작은 흠으로 그 공도 덮지 말아야'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중국 당(唐)의 2대 황제인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은 중국 역대 황제 가운데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꼽힌다. 그가 다스린 시기를 연호를 따 ‘정관((貞觀)의 치(治)’라며 후세의 역사가들은 칭송한다. 그는 재위 기간 중 제왕으로서 갖춰야 할 규범인 제범(帝範)12편을 손수 만들었다. 그중 하나인 심관제사(審官第四)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하나의 악(惡)으로 그 선(善)을 잊지 말고, 작은 흠으로 그 공을 덮지 마라(불이일악망기선(不以一惡忘其善) 물이소하엄기공(勿以小瑕掩其功)’. 후세 호사가들은 당태종이 후세에 당부한 조언은 중국 깊숙이 파고 들어 자신들의 문화가 되었다며 ‘한국에는 없는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미투’ 의혹과 관련해 불붙은 논쟁에서도 이 대목은 함의를 전한다. 고 박 시장이 숨진 지난 10일부터 여권지지 성향의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박 시장 고소인을 찾아내 위해를 가하겠다는 식의 글들이 올라왔다.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 여권 차기대권주자로까지 항상 이타적인 삶을 살아왔던 ‘최장수 서울시장’에 대한 추모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어졌다.

지난 나흘간 박 시장의 빈소가 있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과 서울시청사 앞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찾았다. 온라인 분향소에는 100만명이 넘는 이들이 헌화에 참여했다. 포털에서 '박원순 비서'에 '사진'이 연관 검색어로 제시됐고, SNS상에는 고소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사진이 나돌기도 했다.

아울러 성추행 혐의로 박 시장을 고소한 여성에 대한 '신상털이' 등의 2차 가해가 이어지자, 이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연대 목소리도 커졌다. 서울시가 장례식을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르는 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서울특별시장'을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도 그 기간 동안 56만명을 넘었다. 동시에 SNS에서는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란 해시태그가 피해자 연대 운동의 일환으로 확산됐다.

정계를 비롯한 한국은 여당을 중심으로 한 박 시장 옹호 세력과 해당 여성 옹호로 나눠졌다. 한편에서는 여성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잇따라 성명서를 내고 피해자 보호를 강조하고 진상 조사를 촉구하고 나선 형국이다. 우리는 조국 사태 이후 극명하게 쪼깨진 양 극단의 혐오를 접하게 된 것이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왼쪽에서 세 번째)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이동률 기자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왼쪽에서 세 번째)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이동률 기자

그 중심에는 첨예한 ‘미투’가 도사리고 있다. 검찰 내 성추행 폭로로 국내 ‘미투’운동을 촉발했다는 평가를 받는 서지현 검사의 입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현재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이라는 직책을 맞고 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 역시 인권변호사로서 살아온 고인과 개인적 인연이 가볍지 않았다"면서 "애통해하는 모든 분이 그렇듯, 개인적 충격과 일종의 원망 만으로도 견뎌내기 힘들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그런데 개인적 슬픔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한쪽에서는 함께 조문을 가자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함께 피해자를 만나자는 메시지가 쏟아졌다"고 전했다. 또 "한쪽에서는 ‘네 미투 때문에 사람이 죽었으니 책임지라’고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네 미투 때문에 피해자가 용기냈으니 책임지라’고 했다"는 얘기까지 만감이 오가는 개인적 혼란스러움마저 드러냈다.

"도져버린 공황장애를 추스르기 버거워, 한마디도 하기 어렵다"면서 "한마디도 할 수 없는 페북은 떠나 있겠다"는 그의 심경이 안쓰러울 정도다. 특히 "능력과 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은 말을 해온 것 같다"면서 "제가 가해자와 공범들과 편견들 위에 단단히 자리 잡고 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뛰어내렸던 그 절벽 어디쯤에 우연히 튀어온 돌 뿌리 하나 기적적으로 붙들고 악행과 조롱을 견뎌낸 것"이라고 고백한 대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던져준다

그래도 우리는 해당 피해여성의 심경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그 여성은 13일 고소장에서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다"면서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용서하고 싶었다.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나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다"면서 "많은 분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지만 50만 명이 넘는 국민(청와대 청원 인원수)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은 현실에 내가 느꼈던 위력의 크기는 숨이 막힌다"고 토로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남용희 기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남용희 기자

비유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중국의 애기로 돌아가자. 1976년 중국의 최고 권력자인 모택동이 죽자 등소평이 권력을 잡게 된다. 첫 번째 과제가 모택동 재평가 작업이었다. 5년이라는 치열한 논쟁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 해 1981년 6월 중국공산당 제 11기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결론은 ‘공칠과삼(功七過三)’이었다.

즉 모택동의 혁명이념과 중국 건국에 대한 공은 70%, 문화혁명으로 홍위병을 동원하여 탄압과 숙청을 일으킨 죄를 30%라 평가한 것이다. 등소평은 모택동이 일으킨 문화혁명은 중국역사를 약 30년 이상 후퇴시킨 잘못이지만 그를 격하하거나 그의 업적을 폄훼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모택동이 인민의 나라를 만들었고, 등소평이 인민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도 관련이 있다.

공칠과삼은 원래 공로와 허물이 반반이라는 공과상반(功過相半)에서 유래한다. 공과상저(功過相抵)·공과참반(功過參半)도 같은 말이다. 우리 역사에도 조선 영조~순조 시기 무신 유효원(柳孝源)이 홍경래의 난을 평정했지만 2000명에 가까운 반군을 모두 처형했다해서 공과상반으로 비판받은 기록이 있다.

사람을 볼 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점을 다 봐야 한다.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을 잘못한 이는 거의 없다. 정상 참작이 그래서 존재한다. 모든 것을 잘한 이도 역시 거의 없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고 그 배경과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특히 공인의 경우 공과 과를 분명히 가려 후세에 전해야 한다. 세계에 어떤 통치자도 공과 과가 없는 지도자는 없다. 시대와 개인의 평가에 따라 같은 인물이라도 공칠과삼이 되거나 공팔과이(功八過二)가 될 수도 있다.

박 시장은 생전에 미투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지난 2018년 "성추행, 성희롱 사건은 모든 것을 피해자 관점에서 봐야 한다"면서 "피해자 본인이 됐다고 한 것 이상으로 진상조사와 사후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행 의혹과 관련해서도 해당 사건의 피해자 보호를 강조했다.

지금 우리사회는 고 박 시장과 관련 각자의 생각과 신념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한다. 그래도 피해 당사자가 가장 중요하다. 박 시장은 갔지만 공과 과에 대한 평가와 피해 여성은 남아있다. 진상조사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은 배제시키고 서울시와 수사기관 등이 나서서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공명정대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권이 나서면 잘가던 것도 옆길로 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남용희 기자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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