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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이슈] '세무사법 개정안' 15년째 '삐그덕' 거린 이유는?

  • 사회 | 2017-12-09 04:00
국회가 8일 본회의를 열고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부여하지 않도록 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안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여야 합의로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된 첫 사례다. /배정한 기자
국회가 8일 본회의를 열고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부여하지 않도록 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안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여야 합의로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된 첫 사례다. /배정한 기자

[더팩트 | 김소희 기자] 내년 1월 1일부터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도 세무사 자격이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게 됐다.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세무사법 개정안이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의결과정을 밟지 않고 곧바로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사실 '세무사법 개정안'을 두고 변호사와 세무사들의 '밥그릇 싸움'은 지난 16대 국회부터 15년째 계속되고 있다. 세무사 측은 "전문성을 검증받지 않은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전문자격사 제도에 반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변호사 측은 "수요자 입장에선 사건을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것이 경제적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맞서고 있다.

앞서 16대 국회에서 세무사법 개정안이 통과될 뻔 했지만, 법사위 논의과정에서 법안을 대폭 손질하면서 '세무사'라는 명칭만 사용하지 못하도록 변경하고 자격은 그대로 유지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이 개정안은 법사위에 오래 묶여 있었다. 결국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 조경태 위원장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청했고, 정 의장은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와 협의를 거쳐 본회의 표결에 부쳤다.

◆ '세무사법 개정안' 법사위 건너뛰고 국회 통과…변협 '무한 투쟁' 예고

세무사법 개정안은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8일 재석 의원 247명 가운데 찬성 215명, 반대 9명, 기권 23명으로 통과됐다. 국회선진화법 86조는 법사위가 법안이 회부된 날부터 120일 이내에 별다른 이유 없이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해당 법안의 소관 상임위원장이 여야 합의를 통해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회는 이날 변호사가 되면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얻는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을 찬성 215명, 반대 9명, 기권 23명으로 의결했다. /더팩트DB
국회는 이날 변호사가 되면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얻는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을 찬성 215명, 반대 9명, 기권 23명으로 의결했다. /더팩트DB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이날 본회의 시작 전 개정안에 반대하는 삭발식을 국회 정문 앞에서 변협 임원들과 감행했다. 김 회장은 "변호사들은 세무사 업무를 포함해 모든 법률 업무를 수행할 권한과 전문지식이 있다"며 "세무사법 개정안은 변호사들이 잘하고 있는 세무 대리 업무를 못하게 하고 세무사 자격을 부당하게 박탈하는 폭거"라고 주장했다.

변협 집행부와 전국 2만 4000여 명의 변호사들은 개정 세무사법 폐기를 위해 무한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반면 세무사 단체는 "1시험 1자격증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공짜 자격증 제도는 철폐하는 것이 맞다"며 환호했다.

개정안 통과로 인한 파장은 세무사 외에도 변호사에게 자동 부여됐던 변리사·법무사 직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변호사만 할 수 있는 특허침해소송을 변리사도 대리하도록 하는 변리사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공인중개사, 노무사, 법무사, 행정사 업무 영역에서도 직역간 이해관계 논란이 나온 바 있다.

◆ 법사위가 유독 불편해 했던 '세무사법 개정안'

세무사법 개정안은 지난 16대 국회부터 15년 이상 끌어왔다. 세무사들의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부여 폐지 움직임'은 2003년 16대 국회부터 현재 20대 국회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16대 국회에서 법사위는 변호사가 '세무사'라는 명칭만 쓰지 못하게 하고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을 유지시켰다.

17대부터 20대 국회까지 세무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변호사가 변호사 자격만 취득하면 세무사와 변리사 등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것은 불합리하고, 특혜 조항이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의원은 줄곧 세무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법사위원장을 맡은 19대 때는 이 개정안이 법사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각 상임위 법조 출신들에 막혀서"라고 해석했다.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소위원장 김진태)는 지난달 28일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부여하는 현행 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을 심사했으나 결론을 내지 않고 계속 심사하기로 했다. /이새롬 기자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소위원장 김진태)는 지난달 28일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부여하는 현행 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을 심사했으나 결론을 내지 않고 계속 심사하기로 했다. /이새롬 기자

"세무사법 개정안이 법사위에서 번번이 막히는 것은 법조인 출신이 많은 법사위는 변호사들의 '홈그라운드'이기 때문이다." 세무사 측을 비롯한 세무사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를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애초부터 법사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이다.

법사위 법안심사2소위 위원장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을 포함해 10명의 법안심사2소위 위원 중 7명이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 김 의원은 검사 출신으로 국회의원 당선 전까지 변호사로 활동했다. 같은 당 주광덕 의원도 검사 출신이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백혜련 더민주 의원과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 박주민 의원도 법사위 위원이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 역시 검사 출신이다.

반면 주광덕 의원은 검사 출신 법조인이지만,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주 의원은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세무 관련 법률 대리 업무까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변호사 측의 주장에 대해 "직역 이기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전문직의 자격 제도에 대해 공정하고 투명한 프로세스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변호사는 세무 전문성 없다" vs "다양한 전문가 양성, 로스쿨 제도 취지"

세무사 측은 "전문성을 검증받지 않은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전문자격사 제도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무사 업무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관련 분야에 대한 고도의 전문지식과 숙련된 경험이 필요하나 변호사들은 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1시험 1자격 취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무사 측은 개정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한국세무사고시회는 작년 12월 초 성명 발표에 이어 세무사고시회 회원과 회원사무소 임직원들로부터 5000여 건의 세무사법 개정안 처리 촉구 서명서를 받아 법사위에 전달했다. 그리고 1년 동안 국회 앞 1인 릴레이시위를 하면서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다. 지난달 15일에는 정 의장에 개정안에 대해 직권상정할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한국세무사고시회 이동기 회장은 공문을 통해 "조세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변호사에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세무사법은 변호사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당한 특혜를 주는 것이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로스쿨 출시 변호사들에게 세무사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세무사의 업역을 침해하는 악법"이라고 강조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첫줄 가운데)을 비롯한 협회 관계자들이 세무사법 개정안 반대를 위한 삭발식 이후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더팩트DB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첫줄 가운데)을 비롯한 협회 관계자들이 세무사법 개정안 반대를 위한 삭발식 이후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더팩트DB

반면 변호사 측은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이 부여되는 것은 다양한 분야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스쿨의 취지에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로스쿨은 세무, 특허, 의료 등 직역별 전문 변호사를 배출하고 다양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 만큼 변호사의 다양한 서비스 진출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날 변협 임원들의 삭발식도 법 통과를 막지 못하면서 변협은 예정대로 오는 13일 정오 개정 세무사법의 폐기를 위한 무한 투쟁에 돌입할 전망이다.

김현 변협 회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국회 본회의 통과와 관련해 "변협 임원들이 지금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지만, 13일에 2차 변호사 궐기대회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변호사 업계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들이 일을 못하게 되기 때문에 큰 좌절이고 큰 충격이기 때문에 큰 반발이 있을 것"이라며 "강력하게 국회에 대해 규탄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이어 "결국 큰 방향은 유사 직역과 변호사 업종이 통합해야 할 것"이라며 "변리사나 세무사 등 유사 직역 종사자 중 기존에 있던 사람들에게 변호사 자격을 주는 쪽을 조건으로 장기적인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처럼 전문직업은 변호사와 회계사만 남는 것으로 해야 갈등이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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