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황원영 기자] “임산부 배려석에 늘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타고 있어 이용하기 어려웠는데 공항철도의 경우 인형 덕인지 비어 있었다. 덕분에 임신하고 처음으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다.”
공항철도에서 만난 임산부 이모(34) 씨는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가 아닌 일반 승객이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아 ‘빛좋은 개살구’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공항철도는 달랐기 때문이다. 열차를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도 진분홍색 임산부석은 비어 있었다. 좌석 한쪽에는 귀여운 자태를 뽐내는 인형이 놓여 있었다. 인형은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문구를 들고 미소짓고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을 놓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지자체와 지하철 등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들은 임산부 배력석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용을 자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IoT(사물인터넷)과 인형까지 동원해 자리양보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임산부 배려문화 확산을 위한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항철도는 이달 초 회사 캐릭터인 ‘나르’ 인형을 일반열차 전 객실의 임산부 배려석에 비치했다. 지난 2015년부터 임산부 배려석을 운영하고 4개국어 안내방송을 실시하는 등 임산부 배려석이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나 여전히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공항철도에 놓인 배려인형에는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문구가 한글과 영어로 표기돼 있다. 크기가 작지 않아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 위해서는 배려인형을 들거나 안아야 한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이 임산부 배려석을 함부로 이용하기는 어렵게 됐다.
김한영 공항철도 사장은 “서울역~인천공항역 구간은 장거리 출‧퇴근객의 이용이 많고, 여성 고객 비율이 47.3%로 높다”며 “임산부 배려석 이용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항철도 뿐 아니다. 대전도시철도 역시 인형을 활용해 임산부 배려석 알리기에 나섰다. 대전도시철도공사는 임산부 배려 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전동차 1대에 4개씩 임산부 배려석(84개)에 테디베어를 비치했다. 테디베어에는 ‘여기는 임산부 배려석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시민들이 임산부 배려석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대전도시철도는 그동안 임산부석을 알리기 위해 자리 색상을 분홍색으로 바꾸고 객실 바닥에 안내 스티커를 부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왔다. 하지만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인지가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테디베어를 놓게 됐다.
부산시의 경우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배려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말부터 지하철 3호선에 ‘핑크라이트’ 320개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핑크라이트는 IoT 기반의 임산부 자리양보 알리미다. 열쇠고리 모양이 발신기(비콘)을 소지한 임산부가 부산도시철도 3호선을 타면 임산부 배려석에 설치된 핑크라이트 수신기가 비콘 신호를 감지해 불빛과 음성으로 임산부가 왔음을 안내한다. 임산부가 스스로 비콘을 제어하도록 제작돼 편리함을 더했다.
핑크라이트는 2016년 부산~김해 경전철 구간에 시범운영한 뒤 임산부와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 확대됐다.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효용성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자리가 마련돼 있지만 시민들이 양보해주지 않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가 앉을 경우 눈총을 보내는 사람들까지 있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 임산부 배려석은 2013년 도입됐다.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지하철 1~8호선 객차 한 칸 당 2좌석으로 총 좌석이 54개다. 전체 좌석의 3.7%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마저 제대로 이용하고 있는 임산부는 적다. 임산부들은 배려석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여전히 불편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서울에서 운행 중인 버스 7000여대에도 1~2석이 임산부 배려석으로 지정돼 있으나 임산부가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2016년 실시한 ‘임산부 배려 인식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산부 중 배려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0.9%에 불과했다. 배려하지 않은 이유로는 ‘임산부인지 몰라서(49.4%)’가 가장 많았고 ‘방법을 몰라서(24.6%)’가 뒤를 이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산부 32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온라인 설문 결과 역시 10명 중 6명의 임산부만 배려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초기 임산부들의 경우 입덧과 구토, 피로감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겉으로 보기에 드러나지 않아서 자리 양보 등의 배려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 5개월째라는 이모(34)씨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가방에 달린 임산부 배지를 봐도 양보해주지 않는다”며 “오히려 내가 부담스럽고 눈치 보여서 임산부 배려석쪽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임신 8개월째인 조모(29)씨 역시 “임신한 후 대중교통을 몇 번 이용했지만 몸이 너무 힘들고 불편한 데다 노약자석에 앉을 때 사람들 눈치까지 보여 나중에는 대중교통을 기피하게 됐다”며 “임신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게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호소했다.
최근 아빠가 된 김모 (36)씨는 “아내가 임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기 힘들었고 오히려 굳이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임산부가 신체적·정신적으로 다양한 고통과 변화를 겪는 것을 직접 보며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영인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병원장은 “초기 임산부는 대중교통 이용 시 임산부 배려석을 양보받기 힘들다”며 “임산부 배려석 캠페인을 통해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인식 개선과 배려 문화 정착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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