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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수 논란 취재기] 루머 유포~수사 종료…그리고 그 가운데

  • 연예 | 2015-09-14 05:00

 숨은 진실은? 과거 서지수와 만났다는 D 씨가 '지수러브'와 울림엔터테인먼트 사이에 접촉이 있었다고 더팩트 취재진에게 밝히고 있다. /임영무 기자
숨은 진실은? 과거 서지수와 만났다는 D 씨가 '지수러브'와 울림엔터테인먼트 사이에 접촉이 있었다고 더팩트 취재진에게 밝히고 있다. /임영무 기자

'서지수 사건'에서 '실천적 객관주의'를 떠올리다

어렸을 때 지하철을 타고 가다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지하철 왼쪽 문이 열린다는데 어느 쪽이 왼쪽이야? 내가 어딜 보느냐에 따라 왼쪽이 어딘지도 바뀌잖아." 어머니는 웃었습니다. "이 바보야, 열차가 가는 방향을 보고 서서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를 따져야지."

그런데 모든 일을 이렇게 판단해야 하는 건 아니더군요. 예를 들어 바람은 나아가는 방향이 아니라 불어온 방향에 따라 이름이 바뀝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은 제게 이 바람이 '동풍'인지 '서풍'인지 알려면 "바람아, 넌 어디서 불어 왔니?"라고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자는 이처럼 선택의 기로에 빠질 순간이 비교적 많은 직업입니다. '이건 왼쪽 같은데 혹시 다른 사람들은 오른쪽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반대 방향에 서서 봐야 하나'라든지, '사건의 발단과 과정, 결과 가운데 어떤 곳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같은 크고 작은 고민들이 종종 찾아옵니다.

이번 러블리즈 서지수 기사도 그랬습니다. 제보자와 만난 이후 이 이야기를 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푼다면 어떻게 풀어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답을 '실천적 객관주의'에서 찾았습니다.

서지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속한 그룹 러블리즈. 서지수는 최근 러블리즈에 재합류해 활동을 앞두고 있다. /러블리즈 공식 트위터
서지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속한 그룹 러블리즈. 서지수는 최근 러블리즈에 재합류해 활동을 앞두고 있다. /러블리즈 공식 트위터

'실천적 객관주의'는 대학에 다닐 때 저널리즘 관련 강연에서 들은 말입니다. 언론계에 종사하고 있던 이 강사는 저널리스트로서 판단의 순간에 '실천적 객관주의'를 떠올린다고 했습니다. '절대적으로 객관적이라는 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이 강사는 한 사건이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그렇기에 자신은 '다른 누구라도 자신의 입장에 서면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방향으로 보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기사는 이 '실천적 객관주의'라는 말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 했을지 모릅니다. 기사를 쓰는 내내 서지수와 피고소인인 '지수러브'의 입장에 대해 생각했고, 어린 나이에 저지른 철없는 일이 어떻게 이렇게 크게 번졌는가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도 했고, '나 자신은 지금까지 얼마나 떳떳하게 살았는가'라는 자기 반성도 했습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루머 유포'라는 시작과 '수사 종결'이라는 끝만 남은 이 사건의 과정을 알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지수러브'의 진료확인서. 이 기록에 따르면 '지수러브'는 환기과다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이효균 기자
'지수러브'의 진료확인서. 이 기록에 따르면 '지수러브'는 환기과다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이효균 기자

<더팩트>는 취재를 통해 '지수러브'가 검찰에 제출한 반성문을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반성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평소에도 회사 대 개인이라며 콩밥 먹게 하는 건 일도 아니라며 협박했지만, 저는 그때 법에 대해 무지해 잘못을 한 게 맞고, 사실을 말하면 고소할 수도 없는 줄 알고, 자신이 잘못한 것을 고소하면 양심이 없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중략)

인터넷 기사나 댓글들을 보면 제가 범죄자가 된 기분에 자살하고 싶었고 내가 죽으면 내가 결백한 것을 입증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자살하고 싶었던 적이 많습니다. 경찰 첫 조사를 받고 한 달 혹은 더 넘게 트위터를 쉬고 수많은 언론의 접촉도 무시하고 자숙하고 있었지만 기사는 점점 더 악의적으로 나오고, 해명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해야 피해자들과 내가 욕을 먹지 않겠단 생각에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도 그런 추측글과 질문에 답변을 했었습니다.

(중략)

증거를 찾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상처들을 다시 상기시켜야 했고,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커밍아웃을 하게 되고, 엄마는 매일 떠올리기도 싫은 상황들을 묻고, 도움을 청하느라 친척들과 주변인들에게 불가피하게 성적 취향을 알리게 되고, 데뷔도 않았(안했)는데 얼굴만 보고 좋아하는 극성팬들이 내는 헛소문에 제가 대표로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고 긴 4개월이었고 이 사건이 끝나면 전처럼 그저 나에게 있어 떳떳하고 착하게 살아왔던 한 사람이 아닌 법을 위배하지 않으며 남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살겠습니다. 지수 언니 미안합니다. 언니가 너무 무서웠지만 정말 루머를 유포하려고 계획하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고 악의적인 마음이 없었어요."

이 안에 서지수의 과거를 담은 글이 왜 세상에 나오게 됐는지 그리고 사건의 관련자들이 얼마나 큰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었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 했던 노력까지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이 같은 글을 필자가 아닌 다른 어떤 기자가 보더라도 쉽게 외면하고 묻어둘 순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한 자, 한 자 어렵게 기사를 적었습니다.

제보자 D 씨가 서지수에게 받았다고 주장하는 편지. D 씨는 이 사건이 불거진 뒤 자신을 비롯해 '지수러브' 등 여러 사람들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임영무 기자
제보자 D 씨가 서지수에게 받았다고 주장하는 편지. D 씨는 이 사건이 불거진 뒤 자신을 비롯해 '지수러브' 등 여러 사람들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임영무 기자

4월 만남에서 울림 측 관계자는 '지수러브'에게 "결과적으로 대중은 명쾌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우리들은 구구절절한 내용을 알고 있지만 대중은 딱 하나다. 그래서 누가 잘못했는가. 우리가 아무리 보도자료로 조목조목 얘기를 하려고 해도 사람들은 그거 믿지도 않고 자기들 보고 싶은대로 보는 거 아시잖느냐. 그래서 보도자료는 심플하게 나가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더팩트>는 '피고소인 A 씨를 허위사실 유포로 벌금형 구약식 기소했다'는 심플한 보도자료 뒤에 감춰져 있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긴 기사로 풀어냈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정말 불필요한 것이었는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할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다만 이 기사가 '서지수 논란', '서지수 루머'라고 간단히 압축된 사건의 이면에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앞으로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팩트ㅣ정진영 기자 afreeca@tf.co.kr]
[연예팀ㅣ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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