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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근의 Biz이코노미] '감금에 협박까지…' 중고차 피해, 왜 방관하나

  • 경제 | 2021-05-13 00:00
중고차 관련 피해가 매년 늘면서 시장 개방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중고차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팩트 DB
중고차 관련 피해가 매년 늘면서 시장 개방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중고차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팩트 DB

서민 목숨까지 위협하는 지경…"침묵도 공범, 수수방관 능사 아냐"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올해 초 60대 A씨는 인터넷에 올라온 중고차 매물을 보고 인천에 있는 한 중고차 매매단지를 찾았다.

막상 매매단지에 도착하자 20대 건장한 딜러는 "인터넷에 올라온 차량이 하자가 있으니 다른 차를 구매하라"고 요구했고, 이를 거절하자 딜러 여럿이 문신을 보여주며 협박을 시작했다. 이어 A씨를 8시간 동안 차량에 감금하고, 강제로 대출까지 받게 해 차량을 강매했다.

자식뻘 되는 딜러들에게 중고차 사기를 당한 A씨는 결국 차량을 산 지 20여 일 만에 '중고차 매매 집단에 속아 자동차를 강매당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극단적인 연출을 통해 만들어낸 장면이 아니다. 실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 일이다.

너무도 안타까운 사건 소식에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는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감금·협박 피해자가 목숨을 끊는 사태를 두고 이 같은 탄식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이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얘기다.

중고차 시장의 병폐와 그에 따른 소비자 피해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 통계(2018~2020년)에 따르면 고가의 내구성 소비재 가운데 소비자 불만이 가장 많은 상품은 중고차다. 상담 건수만 4만3093건에 달하지만, 피해구제는 불과 2.2%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경기도가 지난해 7월 중고차 온라인 매매사이트 31곳의 상품을 조사한 결과 중고차 매물 100건 가운데 95개는 허위 매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침수차를 멀쩡한 중고차로 둔갑해 판매하는 행위부터 자동차 담보대출의 취약성을 악용한 금융사기에 이르기까지 중고차 관련 악행과 피해 사례를 헤아리려 해도 열 손가락이 한참 모자라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 통계(2018~2020년)에 따르면 중고차가 고가의 내구성 소비재 가운데 소비자 불만이 가장 많은 상품으로 나타났다. /더팩트 DB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 통계(2018~2020년)에 따르면 중고차가 고가의 내구성 소비재 가운데 소비자 불만이 가장 많은 상품으로 나타났다. /더팩트 DB

중고차 시장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인식 역시 바닥을 친 지 오래다. 지난달 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리서치 전문기관 '한길리서치'에 의뢰, 중고차 시장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1000명 가운데 800명이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중고차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자동차시민연합이 지난달 12일부터 시작한 중고차 시장 전면 개방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 참가자 수는 한 달도 안 돼 10만 명을 넘어섰다.

상황이 이런 데도 정부는 수 년째 입을 굳게 다물고 수수방관이다.

국내 중고차 매매업은 지난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완성차 업계의 진출이 제한됐다. 이후 지난 2019년 2월 지정 기간이 만료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사업 진출 의사를 밝혔다. 동반성장위원회까지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 포함하는 건 부적합하다'고 판단했지만,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부는 1년이 넘도록 어떠한 제스처도 보이지 않고 있다.

자동차는 기본적인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이동수단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특히, 중고차 시장은 단순히 '자동차를 사고파는 사업'을 넘어 국민의 안전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정부 차원의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 3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 범죄와 관련해 "침묵은 공범"이라며 모두가 문제해결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문제를 알면서도 수수방관하는 행위도 또 다른 이름의 '범죄'나 다름없다.

공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뒷짐을 지고 있을 이유는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중고차 시장 개방을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한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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