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근의 Biz이코노미] 이재용 파기환송심, '시련 재판' 우려된다

  • 경제 | 2020-11-10 12:0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는 모습 /이덕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는 모습 /이덕인 기자

삼성 발 묶은 '사법 리스크', 재탐·삼탕 논쟁 반복돼선 안 돼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고대부터 중세까지도 유럽에서는 피고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해 그 결과에 따라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재판이 이뤄졌다고 한다. 오직 재판의 결과는 신만이 알 수 있다는 절대 전제를 두고 사실상 결론을 정해둔 채 벌인 이 같은 재판을 '시련 재판'이라고 한다.

뜨거운 불길을 걷게 하거나 끓는 물에 신체를 담가 살아나면 무죄요, 죽으면 유죄가 되는 극악무도한 악습이야 오늘날 상상도 못 할,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얘기다.

지난 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했다. 이 부회장이 법정에 출석한 건 지난 1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지난 2017년 4월 7일 치러진 1심 첫 재판 이후 2020년 끝자락까지 이어진 법정공방 속에 이 부회장이 치른 재판 횟수는 70회가 넘는다.

여기에 지난 9월 검찰이 별건으로 또다시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하면서 그가 재판정에서 할애할 시간이 최소 2년은 더 늘어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삼성 경영진 수십여 명에 대한 수백여 차례에 달하는 소환 조사가 이뤄졌다. 또한 수십여 차례에 달하는 압수수색에도 '혐의 소명'을 위한 결정적 증거 부재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스스로 권력 남용을 막겠다며 도입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까지 '10 대 3'이라는 압도적 다수로 불기소 및 수사 중단 권고를 내렸음에도 결국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검찰과 삼성 양측 주장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의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유죄라는 단정'이 아닌 오로지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유무죄를 가늠해야 한다는 점에는 어느 쪽에서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제기된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재판 진행 방식을 두고 건건이 변호인단뿐만 아니라 재판부와 설전을 벌이는 특검의 날 선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려가 앞선다.

검찰은 지난 9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10대 3'이라는 압도적 다수로 불기소 및 수사 중단을 권고했지만, 이재용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더팩트 DB
검찰은 지난 9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10대 3'이라는 압도적 다수로 불기소 및 수사 중단을 권고했지만, 이재용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더팩트 DB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 평가방식에 대한 의견 충돌이야 둘째로 치고, 수개월이 넘도록 지연된 재판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구두로 진술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절차 하나하나에 '의견을 반영해 달라'며 휴정으로 치닫게 하는 게 혐의 입증을 위한 명분이 될지 의문이다.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것이 기소권을 가진 검찰의 역할이지만, 일부 여당 소속 의원들조차 '밀어붙이기식 기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낼 만큼 삼성을 향한 사정 당국에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나라 밖에서도 '검찰이 국내 최고 가치의 회사에 대한 법적 난제를 가중시켰다'(블룸버그통신) '지난 3년간 법적 문제로 거의 마비 상태에 놓였다'(월스트리트저널)는 우려 섞인 평가가 나오지 않았던가.

나라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안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가 경제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사명이 아닌 '조직의 명운을 위한 자존심 싸움'으로 비쳐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재판 결과가 미칠 영향과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재판부를 향한 노골적인 불신으로 재판 진행을 지연시키는 기 싸움은 자제해야 한다.

피고인 이재용과 삼성의 처지가 검찰의 관심 밖이라 하더라도 햇수로만 5년을 훌쩍 넘긴 사법 리스크에 '삼성' 브랜드 이미지 실추는 물론 초를 다투는 글로벌 경쟁 속에 경영활동에도 단단히 발목을 잡힌 것도 사실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이후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10조 원'이 넘는 상속세 액수에만 쏠리고, 선진국에서도 전례 없는 상속세 비율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것도 '범죄집단'이라는 낙인 속에 커진 반재벌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목숨을 부지한들 심한 화상으로 걷지 못하게 된 두 다리만 남았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재탕, 삼탕식 논쟁 속에 삼성의 미래 경쟁력이 추락할 것이라는 경제계의 염려가 기우로 끝나기를 바란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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