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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의 체인지] 尹 대통령 '내 탓', 엑스포 담화에 담긴 의미

  • 칼럼 | 2023-12-01 00:00

정치권에서 경쟁상대는 청산되야 할 적...'내 탓'없이 '남 탓'만
진정성있는 담화가 국민들의 공감...민주당도 공세없이 눈치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무산과 관련 대국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무산과 관련 대국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엑스포 유치를 총지휘하고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서 우리 부산시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 여러분께 실망시켜드린 것에 대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모든 것은 제 부족함"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남 탓이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사안의 원인이 남에게 있다는 태도를 말한다. 사람들에게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귀인(歸因)이라 한다. 사건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그다음에 이어질 행동을 예측할 수 있기에 귀인은 심리학의 중요한 주제로도 연구돼 왔다. 귀인 과정은 귀인 차원에 따라 달라진다. 원인이 행위자 자신에게 있으면 내부 귀인 즉 '내 탓'이고 상황이나 조건처럼 행위자가 통제할 수 없는 곳에 있으면 외부 귀인, 즉 '남 탓'이다.

다만 성취동기가 있는 이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내 탓'을 먼저 생각해 단점을 보완하고 역량을 발전시켜 다음에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더 좋은 결과를 낳을 방법을 모색한다. 요즘처럼 개인적이고 진영논리가 판치는 각박하고 무한경쟁적인 상황이라면 눈앞의 부정적 '후과'를 피하고자 웬만하면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귀인을 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혹여 '내 탓'에 따른 남에 의한 후과가 자신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당은 야당 탓, 야당은 여당 탓, 정치인은 언론 탓, 언론은 정치 탓, 근로자는 사용자 탓, 어른들은 젊은이 탓, 젊은 세대는 늙은 세대 탓 등이 아니라고 말하기 힘든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정치적 경쟁자나 경쟁 관계의 집단끼리는 상대가 이미 청산되어야 할 적(敵)이 된 모양세다. 상대방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선거운동 때만의 수사학이 아닌지 오래됐다. 분열과 대립이 정치적 숙명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사회통합이 헛된 희망처럼 보이는 것도 다름 아니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끝난 지 하루가 채 지나지도 않은 지난 29일 정오 직전 일이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한다는 문자를 공지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브리핑을 임박해서 이례적으로 긴급 공지한다. 윤 대통령은 이어 11시59분쯤 브리핑실에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을 포함한 수석급 참모들과 함께 입장했다. 이어 참패로 끝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해 통렬한 사과를 한다. 윤 대통령의 신속하고 직접적인 공개 사과는 취임 뒤 사실상 처음이었다. "부덕의 소치", "제 부족함 탓"이라는 ‘제 탓이오 담화문’을 읽어 내려간다.

지난 21일 부산 서면교차로에서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2030 부산세계박람회 D-7 출정식을 열리고 있다’. /부산시
지난 21일 부산 서면교차로에서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2030 부산세계박람회 D-7 출정식을 열리고 있다’. /부산시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엑스포 유치는) 굉장히 중요한 국정과제로 국정책임자가 국민 앞에 직접 말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솔직하고도 진정성 넘치는 사과는, 엑스포 유치를 위해 일선에 섰던 최고책임자이지만 그 순간에는 굳이 이렇게 급박하게 할 필요가 있었냐는 쓸데없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직접 밝힌 담화 내용은 대통령의 진정성이 재삼 확인됐다는 게 중론이었다.

일각에서는 예상을 넘어서는 유치전 참패로 여론이 급격히 악화할 것을 우려한 측면이 크다며 대통령의 진정성을 폄훼하기도 했지만 설득력이 아주 약해 보인다. 유치 실패의 후폭풍이 장기화하는 것을 차단하고, 재빨리 ‘엑스포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신속하게 고개를 숙인 것이라는 야당 일각의 분석도 상대 탓만 앞세우고 국민보다는 자당을 앞세워 온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근시안적 시각으로만 여겨진다.

사실 정부는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와 박빙 승부’의 가능성을 내비쳐온 측면도 있어 119표(리야드) 대 29표(부산)라는 득표차를 두고 정부의 정보력과 외교력, 메시지 관리 능력 등 역량 부실이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비판이 나오기는 했다. 다만 전적으로 대통령 탓이라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 지나치게 모든 것을 무조건 대통령 탓으로 돌리고 심심찮게 탄핵까지 거론해온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에 불필요한 빌미를 줄 수 있는 데도 이렇게 나선 명확한 이유는 있어 보인다. 의외로 평소와 달리 유치전 실패에 대한 민주당의 공세도 약하다. 내년 총선에서 이른바 '낙동강벨트' 재탈환을 고려해 부산 경남의 눈치를 보는 듯하다, 눈치를 본다는 얘기는 윤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담화가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낸 방증이라는 반응이 우세한 대목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파리 이시레물리노에서 열린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진행된 2030 세계박람회 경쟁 프레젠테이션(PT)에서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영어 연설을 앞두고 정의선(왼쪽부터)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파리 이시레물리노에서 열린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진행된 2030 세계박람회 경쟁 프레젠테이션(PT)에서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영어 연설을 앞두고 정의선(왼쪽부터)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물론 올해에만 월 평균 1회 이상 해외를 방문하는 등 ‘세일즈 외교’에 공을 들인 윤 대통령 개인적으로도 엑스포 유치 실패가 뼈아플 수밖에 없다. 특히 엑스포 유치에 기대를 걸어온 부산·경남을 비롯한 전 국민들의 상심이 대통령으로서는 우려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을 피해갈려는 정치적 셈법이었다면 '내 탓' '내 잘못' 담화는 나올 수가 없었다고 본다. '네 탓'으로 일관된 담화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국민공감을 위한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정치분석가들은 진단한다. 정부여당은 엑스포 유치 성공으로 경기활성화와 민생회복의 동력으로 삼으려 했다.

윤 대통령이 담화에서 국민들의 상실감을 고려해 절반 이상을 ‘경제와 민생’에 할애한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부산을 해양과 국제금융과 첨단산업, 디지털의 거점으로서 계속 육성하고, 우리 영호남의 남부 지역이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굳이 서울까지 오지 않더라도 남부 지역에서 부산을 거점으로 모든 경제, 산업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을 차질 없이 해나가겠다"고 약속한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정치는 지금도 타협과 협상의 자리에서도 '독선'과 '네 탓'을 항상 세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여야는 상대를 팃하며 싸우기만 하는데 이골이 났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근본 원인과 그 구조를 밝히고 대책을 세워야 할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씌우기에 바쁘다. 와중에 국민만 피해를 봐서야 되겠는가.

‘내 탓’과 네 탓‘은 '네'와 '내'와는 한 획 차이지만 그 사이와 간격은 너무 멀어 보인다. 하지만 국민 눈높이에는 ’내‘와 ’네‘가 다 한통속이다. ’네 탓‘도 ’내 탓‘인 것이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엑스포 유치 실패에서 비롯된 대통령의 ’내 탓‘이 오늘도 서로 다투는 대한민국 정치계에는 너무 빛나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파리 이시레물리노에서 열린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진행된 2030 세계박람회 경쟁 프레젠테이션(PT)에서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영어 연설을 앞두고 정의선(왼쪽부터)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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