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부동산 적폐 청산'과 신뢰 회복, 본질부터 파악해야

  • 칼럼 | 2021-03-16 14:41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LH 전·현직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LH 전·현직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사건과 관련해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3기 신도시 백지화는 신뢰 회복하라는 국민들의 요구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공자(孔子)의 제자인 유자(有子)가 남긴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이 있다. ‘기본이 바로 서면 도(道) 즉, 나아갈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기본을 세우고 지켜야 설득력과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과정과 결과도 정의롭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돌파할 카드로 ‘부동산 적폐 청산'을 꺼냈다. 약 6분간 이어진 수석 보좌관회의 모두 발언에서 "부동산 적폐 청산"을 5번 말했다. "우리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라고 부연했다. 일견 LH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온당한 평가처럼 들리다가도 한편으로 개운치만 않은 것은 왜일까?.

'보수 정권의 부정부패'를 상징하는 용어가 되버린 '적폐 청산'으로 말하고, '촛불 정신'까지 소환한 탓이다. 정권 초기 ‘적폐 청산’은 국민 다수의 신뢰가 있었다. 탄핵 정국 이후 정치권에서 '적폐'는 박근혜·이명박 정권의 비위와 동의어가 됐다. 물론 이번 사태도 사전적 의미로는 적폐가 맞다.

대통령은 "현 정부가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이지만, 우리 정치가 오랫동안 해결해오지 못한 문제"라고 규정하며 전 정권을 끌어들였다. '부동산 투기가 현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라며 전 정권에 전가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적폐 청산이 뭔가 달라 보인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 11일 페이스북에 남겼던 '예언'을 우스갯소리로 흘려듣더라도 그런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 전 최고위원은 "LH가 MB 때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합쳐져 만들었다는 점에 착안해 MB 탓을 할 것"이라며 "MB의 잔재라며 ‘고심 끝에 LH를 해체한다’고 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반성 위에서 단호한 의지와 결기로 '부동산 적폐 청산'과 '투명하고 공정한 부동산 거래 질서 확립'을 남은 임기 동안의 핵심적인 국정과제로 삼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공직자 투기-부패근절 대책 TF는 15일 회의를 열고 공공주택특별법·한국토지주택공사법·공직자윤리법·이해충돌방지법(국회법)·부동산거래 및 부동산서비스산업에 관한 법 등 이른바 'LH 재발방지 5법'을 추진하기로 했다./이새롬 기자
더불어민주당 공직자 투기-부패근절 대책 TF는 15일 회의를 열고 공공주택특별법·한국토지주택공사법·공직자윤리법·이해충돌방지법(국회법)·부동산거래 및 부동산서비스산업에 관한 법 등 이른바 'LH 재발방지 5법'을 추진하기로 했다./이새롬 기자

지난 12일 "이번 일을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고 공정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며 LH 사태를 ‘부동산 적폐’로 처음 명명한 지 사흘 만에 '적폐 청산'을 구체적 목표점으로 제시한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송구하다’ ‘죄송하다’ 대신 ‘정부가 반성한다’는 표현을 썼다. 조금 생경하다. 공직자의 투기라서 정부가 반성하는 건지 헷갈린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과 형식을 갖추되, 여론이 더 악화할 것에 대비해 '대통령 본인의 사과'는 아껴둔 것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또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공공주도형 부동산 공급 대책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며 "2ㆍ4 공급 대책을 뒷받침하는 입법에 속도를 내 서민 주거 안정에 힘을 보태달라"고 국회에도 촉구했다.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및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 등을 언급하며 "부정한 투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근본적 제도 개혁에 함께 나서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적폐청산’외에 ‘부동산 2.4 공급대책이 흔들림 없이 추진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도 여러 차례, 역시 대통령 직접 메시지로 나갔다"면서 "2·4 대책이 표류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백 번 양보해 지금까지의 부동산 투기 문제가 전 정권의 ‘부동산 적폐’ 탓이고 때문에 LH 사태의 책임도 100%있다고 해도 이번 사태를 보고 분노하는 국민들의 생각을 담아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대통령이 다음 날인 1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LH 전·현직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사건과 관련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고 발빠르게 사과해 그나마 다행이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논란이 된 광명·시흥 지역 등 3기 신도시의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반이 넘어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15일 나왔다./YTN 방송 캡처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논란이 된 광명·시흥 지역 등 3기 신도시의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반이 넘어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15일 나왔다./YTN 방송 캡처

과정의 공정에 이은 정의로운 결과는 신뢰에서 비롯된다. 지금 많은 국민이 정부의 이번 사태의 해결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앞서 시민단체로부터 LH 투기 의혹이 제기된 바로 다음날 대통령이 강력 대응을 지시하고 나섰지만 1차 정부합동조사 구성과정에서의 잡음에다 조사결과도 여론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다.

또 검찰의 수사 참여 문제로 논란이 일었고 특별수사본부도 뒤늦게 구성되는 등 경찰 수사가 미덥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장관을 조기에 경질하지 않고, 사퇴 시점을 미루는 애매한 태도도 많은 논란을 불렀다. 그러다 보니 국민은 정부의 투기자 즉시 전원 색출 의지에 대해서는 더 더욱 믿지 않는다.

지난 12일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전국 500명 대상으로 ‘3기 신도시 추가 지정 철회’ 주장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p)에서도 잘 드러난다. ‘적절하다’는 응답이 57.9%로 집계됐다. ‘부적절하다’는 34.0%로 ‘적절하다’는 응답보다 23.9%p 적었다. ‘잘 모르겠다’는 8.1%였다. 투기 온상이 된 3기 신도시 지정을 아예 취소하라는 여론이 절반을 넘었다.

특히 3기 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인 경기·인천 지역 시민들이 백지화를 더욱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도시 지정 철회 주장이 ‘매우 적절하다’는 의견이 47.4%, ‘적절하다’는 17.8%였다. 반면 ‘부적절하다’는 13.0%, ‘매우 부적절하다’는 13.1%로 집계됐다.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다면 광명 시흥지역 만이라도 백지화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적지않다.

당정청은 열렬 지지자들만 보지말고 우선적으로 국민의 신뢰 회복부터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LH 해체수준의 개혁 등 제도개혁안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해 신뢰를 획복하는 길은 3기 신도시 예정 일부지역이라도 백지화 하는 것 맞다고 본다. 그래야만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여당 승리의 가능성도 보일 것이다.

중국의 사상가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지지불태/ 知止不殆)'고 경계했다. 순자(苟子)는 군주민수(君舟民水)라고도 했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은 배를 뜨게 하지만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신뢰 없이 공정만 앞세우다가 죽도 밥도 안된다. 이때 공정은 공정도 아니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논란이 된 광명·시흥 지역 등 3기 신도시의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반이 넘어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15일 나왔다./YTN 방송 캡처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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