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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의 체인지] LH 땅투기 의혹, 그들만의 '공정'이 빚은 참사

  • 칼럼 | 2021-03-09 14:38
문재인 대통령은 8일 LH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8일 LH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해 "국가가 가진 모든 행정력과 수사력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청와대 제공

수사권 없는 검찰의 긴밀 협력 한계...국민 신뢰 되찾는 방안 필요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져 정쟁의 소재로 곧잘 인용된다. 문대통령이 문구를 처음 쓴 건 2012년의 일이다. 그 해 9월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문재인 후보의 수락 연설에서였다고 한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공평’과 ‘정의’가 국정운영의 근본이 될 것입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당시 연설문을 쓴 이는 윤태영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다는 후문이다. 초안엔 이 내용이 없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면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함, 결과의 정의라는 국정운영 원칙을 바로세우겠다"는 부분을 추가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 문구가 추가됐다는 게 정설이다.

8년 전 정치인 문재인은 어떤 평등과 공정, 정의를 염두에 두었던 걸까. 지금 청년들이 실망하고 국민이 분노하는 ‘공정’과 다른 건 아닐까?

취임사와 달리 그동안 국정운영은 평등과 공정 및 정의의 가치가 매끄럽지 못했던 적이 적지 않았다. 얼마 전 중대범죄수사청 설립을 반대하며 사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일약 차기 대권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1위에 오른 사실이 상당 부분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여기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은 타오르는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25번에 걸친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과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 주거 불안이 여전한 가운데 터졌기 때문이다.

LH의 도덕성과 사업 능력에 전면적인 의문이 제기된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가장 심각한 국면인 듯하다. 눈앞에 둔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의 흐름이 야당 주도로 바뀌는 등 돌변하고 있는 정치적 상황이나 임기말이라는 사실을 논외로 하더라도 그렇게 보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영진은 4일 일부 직원들의 경기 광명시흥 투기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LH 제공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영진은 4일 일부 직원들의 경기 광명시흥 투기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LH 제공

지난달 4일 정부가 발표한 ‘대도시권 주택 공급 획기적 확대 방안’을 보면 국민적 분노는 ‘터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확대 방안에 따르면 LH는 토지 소유자들로부터 땅을 넘겨받아 사업 시행부터 분양까지 맡는 게 골자다.

과거 민간이 주도하던 도심 주택 공급을 LH를 비롯한 공공이 직접 하고 이 과정에서도 감정평가와 분양 배정, 일반 분양가 책정에서 절대적 권한까지 가지게 되어 있다.

정부의 주택안정정책 성공을 위해 주택 공급의 전권을 거의 맡기다시피 한 것이다. 이 와중에 "직원들 땅 투자가 뭐가 문제냐"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일부 임직원의 투기 사실을 입증할 만한 일련의 정황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LH가 공정한 과정으로 개발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보는 이는 없다. 국민들이 작심하고 "LH에 땅을 맡길 수 없다"고 반발할 경우 2·4 대책의 실패는 필연이다.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이미 실패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8일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지난 1월 공식 출범한 경찰 국가수사본부가 중심이 되어 즉각적인 수사를 하라고 당부했다. 여기에 검찰의 '긴밀한 협력'이라는 말로 적극적 참여를 주문했다.

문제는 민생범죄로 구분되는 부동산 불법거래는 경찰의 수사 범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다. 검찰의 수사참여에 제약이 따른다. 민주당 국토위 간사인 조응천 의원은 "검찰이 투입돼 직접 수사를 할 수 없게 법·제도가 바뀌었다"며 검찰 개입의 한계를 지적했다. 아무리 유기적 협력을 강조해도 수사권 없는 검찰의 ‘긴밀한 협력’은 어렵다.

반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말대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하니 범죄완판(범죄가 판을 친다)하는 상황"이라면서 "감사원에서 감사를 착수하고, 검찰이 수사를 맡고, 국회가 국정조사를 해야 국민이 납득한다"고 주장했다.

전국 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남연합은 8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남 진주 본사 앞에서 LH직원들의 광명 시흥시 농지 투기와 관련 항의 집회를 갖고 'LH한국농지투기공사'현수막을 내걸었다./진주= 이경구기자
전국 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남연합은 8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남 진주 본사 앞에서 LH직원들의 광명 시흥시 농지 투기와 관련 항의 집회를 갖고 'LH한국농지투기공사'현수막을 내걸었다./진주= 이경구기자

정부합동조사단이 전수조사에 돌입한 상황이다. 조사 대상이 최대 10만 명을 웃돌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필요할 경우 공직자의 형제나 4촌, 지인 등으로도 조사 대상은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국민들은 마뜩잖다. 당사자인 국토부를 포함한 정부의 합동조사단이 구성된 데 따른 '셀프조사'에 대한 반감으로 보인다. 합동조사단에 검찰과 감사원이 빠진 부분도 영향을 준 듯하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제기했던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정부 자체 조사는 제 식구 봐주기 축소·소극조사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큰 상황"이라고 제기한 부분과 맞물린다. "정부 합동조사단 조사와 별개로 수사기관의 강제 수사나 감사원의 감사 등도 병행돼야 한다"는 것은 과정의 공정을 바라는 국민의 목소리인지 모른다.

전문가들은 토지매입자들 일명 ‘투기꾼’들의 경우 차명이나 법인 명의로 토지를 사들이기 때문에 10만 명의 전수조사는 '헛발질'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말한 ‘돈 되는 땅’의 토지 매입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막무가내식의 전수조사보다는 속칭 '돈 되는 땅'부터 들여다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수사 이후 LH 외에 다른 공공기관이 주택 공급을 맡는다고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권한이 집중되면 부패는 싹튼다. ‘공공’의 이름 뒤에 숨어 개발 정보를 미리 얻는 내부자와 정치인, 권력자들이 사적 이익을 탐하는 온상이 될 수도 있다.

공공 개발이 민간 개발보다 공익에 부합할 거라고 믿는 것도 착각이다. 공공이 민간보다 주택 공급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착각과 오만의 산물이다. 공정의 가치를 바탕에 둔 주택공급만이 정책에 대한 전국민적 신뢰를 얻고 집값도 조기에 안정될 것이라고 믿는다.

여권이 만약 자신들이 생각하는 조사 및 수사에 대한 과정과 향후 추진방향이 올바르고 공정의 가치에 적극 부합된다고 믿는다면 이는 또 다른 오만이다. '그들만의 공정'이다. 야당을 포함한 그 외의 다양한 생각들이 반대를 위한 정치적 수사로 들린다면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진영논리에 함몰되지 않았는지부터 고민해봐야 한다. 정치적 위기도 벗어나고 국민들에게 신뢰도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은 '진영'이 아닌 '모두의 공정'으로 가는 길이다.

전국 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남연합은 8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남 진주 본사 앞에서 LH직원들의 광명 시흥시 농지 투기와 관련 항의 집회를 갖고 'LH한국농지투기공사'현수막을 내걸었다./진주= 이경구기자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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