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北 보안성 출신이 본 '사랑의 불시착'… 현실성은?(영상)

지난 19일 북한 보안성 감찰국 출신 탈북민 김경일(가명) 씨와 만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더팩트>와 인터뷰하는 김 씨 모습. /홍제동=이동률 기자

북한 보안성 출신 탈북민과 함께 본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더팩트ㅣ홍제동=박재우 기자·한건우 인턴 영상기자]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돼있다. 그럼에도 북한과 관련한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는 줄줄이 방영되고 있다. 백두산에서 화산이 폭발해 우리 군이 북측에 침투한다는 스토리의 영화 '백두산'이 개봉했고, SBS에서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의 실제 북한 여행기를 다룬 '샘 해밍턴의 페이스北'이 방송됐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 DMZ(비무장지대)에 불시착한 재벌 상속녀와 그녀를 숨기고 지키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북한군 장교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도 지난 14일 tvN에서 첫 방영됐다. 남한 여성(극중 손예진)과 북한 남성(극중 현빈)이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물로 주인공뿐 아니라 배경으로 북한 전방 사택마을이 펼쳐져 시선을 끌고 있다.

<더팩트>가 지난 19일 서울 홍제동의 한 카페에서 남측의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 감찰국 출신 탈북민 김경일(가명) 씨를 만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얼마나 현실성 있게 북한 내부를 묘사했는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 씨는 북한에서 가족이 숙청을 당한 후 공해상을 통해 탈북했다. 아직 남아있는 가족들이 북한에 있어 조심스럽다면서 사진과 영상 촬영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현재 김 씨는 우리나라에서 북한 관련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김 씨는 이 드라마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전문가로서 북한을 주제로 만들어진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청했다"고 답했다. 그는 지금까지 방송한 내용으로는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북한을 배경으로 한 영화·드라마 중에는 손에 꼽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결말은 안 봐도 뻔하지 않겠느냐"며 "남주인공 현빈이 여주인공 손예진을 위해서 탈북할 것 같다"고 드라마 결말에 대해 개인적인 예상(?)을 하기도 했다.

다음은 드라마 속 장면과 김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장면을 분석한 내용이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첫 화에서 여주인공 윤세리(손예진)가 북측 DMZ를 벗어나 북한 전방 사택마을로 도착한다. 사랑의 불시착 극중 주인공들의 모습. /tvN 사랑의 불시착

#Take 1. 북한 전방 사택마을에 도착한 윤세리(손예진). 그리고 들려오는 북한 사투리

첫 화에서 여주인공 윤세리(손예진)는 북측 DMZ를 벗어나 북한 전방 사택마을에 도착한다. 아이들이 줄을 사열하며 등교하는 모습과 '인민의 락원'이라고 쓰인 운동장에서 북한 주민들이 아침 체조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신이 도착한 장소가 남한인줄 알았던 주인공은 눈 앞에 펼쳐진 모습에 경악한다.

김 씨는 이 장면에 대해 "굉장히 잘 표현했다"며 "시골 냄새가 나는 농촌 마을을 잘 표현했고, 북한식 김치냉장고인 '김치움(겨울철에 김장독을 넣어 두기 위하여 만든 움)'도 구체적으로 나타냈다"고 호평했다.

북한 사투리와 관련해선 이전 북한을 다룬 드라마들과는 확실히 차이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는 북한의 전형적인 용어를 쓰지 않고 '오마니'로 대표되는 신의주 사투리를 많이 사용했다"며 "아마 신의주에서 온 실향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어투가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 드라마에선 대체로 등장인물이 평양 말을 잘 구사하고 있다"며 "조사를 많이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 이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탈북민 출신인 곽문안 작가가 보조작가로 참여했고, 백경윤 북한말 전문가도 자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민경대대 대원들은 황토색 군복을 입지 않고 개구리 군복을 입고 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견학이 재개된 지난 5월 실제 북측 경비군인들이 판문각을 나와 근무지로 이동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Take 2. 북한군도 '개구리 군복'을?

극중 민경대대 대원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북한군 황토색 군복을 입지 않고 '개구리 군복'을 입고 있다. 최근 판문점에서 근무하는 북한군의 의상도 이 옷으로 바뀌었다.

이 부분이 드라마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이 부분에 대해 "판문점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개구리 무늬 군복을 입지만 일반 군인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토색) 복장을 입는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소속된 부대는 민경대대인데, 판문점에 근무하고 있는 군인들과 민경대대는 다르다고 했다. 특히 그는 드라마 속 군인들의 군복에 대해 지나치게 '현대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북한군에는 주인공이 착용하고 있던 '방탄조끼'는 없고 '야투경'도 없다고 했다. 김 씨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럭셔리'하게 포장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Take 3. 북한 보위부, 도피 중인 남한 사람에게 돈 받고 안식처 제공

등장인물 중 구승준 역을 맡은 배우 김정현은 한국에서 사업 도중 거액의 공금을 횡령해 수배 중이다. 수사망을 피해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북한 보위부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해외계좌를 통해 지불한 뒤 북한에서 안전하게 머물게 된다.

이 장면에 대해서 김 씨는 외국인이면 몰라도 아마 남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다. 한 사례로 후지모토 겐지를 언급했다.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13년 동안 김정일 전속 초밥 요리사로 일했던 인물이다. 김 씨는 "후지모토 겐지가 그 댓가로 여러 가지를 제공받았다"며 "아마 그걸 참고하지 않았나 싶다"고 분석했다.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 중간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에서 스위스를 자유롭게 여행 중인 리정혁(현빈)의 모습도 등장한다. 과연 극중 현빈 아버지로 나오는 총정치국장이란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 /tvN 사랑의 불시착

#Take 4. 총정치국장 아들이면 스위스 유학 가능?

주인공 리정혁 중대장의 정체가 총정치국장의 둘째 아들로 드러난다. 총정치국장이라는 위치는 북한에서 어느 정도 권력일까. 또, 윤세리와의 대화를 통해 극중 과거 리정혁이 스위스의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천재 피아니스트였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그리고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에서 스위스를 자유롭게 여행 중인 리정혁의 모습도 등장한다.

김 씨는 "총정치국장은 군부에서 1인자로, 북한에서 서열로 3위"라며 "최고지도자(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최룡해) 다음이다. 인민무력보위총국이 총정치국 산하이다. 군내에서는 서열 1위"라고 말했다. 김 씨는 총정치국장 아들 정도면 스위스로 유학을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출국 시 지도자의 승인이 필요한데, 총정치국장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 씨는 이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는 "총정치국장의 나이를 보면 대체로 70~80대"라며 "그러면 자식들은 50~60대다. 나이가 어린 총정치국장을 찾아 볼 수 없어서 사례가 없는 것이지 어린 자식이 있다면 그 정도 위치에선 충분히 유학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Take 5. 드러난 윤세리 존재, '11과 대상'은 간첩?

리정혁은 서울 말을 쓰는 윤세리의 존재가 발각되자 '11과 대상'이라며 위기를 모면했다. 윤세리가 11과가 무엇이냐고 묻자 리정혁은 "11과 대상은 남한으로 파견되는 특수 공작원"이라고 했다.

통일전선부(통전부) 산하 11과에 대해 김 씨는 "대남연락소나 공작원 가족들을 돌봐 주는 곳"이라며 "(대남 공작원) 부모가 죽었을 때 혁명학원을 보내는 업무 등을 진행해 대남공작부문과 연계된 곳은 맞다"고 설명했다.

#Take 6. 북한 권력층만 탈 수 있는 727차

윤세리가 위험에 빠지자 리정혁은 평양에서 727 벤츠(극중 제규어)를 빌려 전방 사택마을까지 단숨에 운전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교통관리자와 북한군 초소에선 727 번호를 인식하고 길을 터준다.

1953년 7월 27일은 남북전쟁이 끝난 날로 북한에서는 '전승기념일'이라고 칭하고 있다. 김 씨는 "원래 북한에서 2000년대까지 그 차의 번호는 김정일의 생일을 의미하는 216이였다"며 "그 번호가 김정은 시대가 출범한 뒤 변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16벤츠를 타는 대상은 노동당 위원 이상"이라며 "각 도에서는 한 명 내지 두 명이다. 도당위원장과 노동당 위원으로 등록된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Take 7. 북한 주민들의 '천국의 계단' 사랑?

북한 주민들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중에서도 한 군인이 근무 중 '천국의 계단(2003)'을 보다 여주인공이 DMZ를 넘는 것을 막지 못하는 실수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김 씨는 "북한군이 근무시간에 드라마를 보는 장면은 과장됐다"며 "군 부대 안에서 그렇게 시청할 수 없다. 보더라도 개인이 몰래 자택에서 혼자 시청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2003년 당시 검열에 동원됐던 적이 있다"며 "6개월 동안 회수된 남한 드라마가 총 30만 장 됐는데, 그중 30-40%가 한국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었다. 아마 이게 작용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김경일 씨는 최근 나오는 북한 콘텐츠는 북한 독재사회의 면모는 보여주되 그 내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발전만 못 했을 뿐이지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당시 모습. /이동률 기자

김 씨는 만약 이 드라마가 북한 주민들에게 퍼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재미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라며 "남측에서는 한류가 퍼지면 북한 정치체제를 무너뜨릴 거라고 기대하는데, 막상 그렇지는 않다"고 예상했다.

그 이유로는 북한 통치 시스템 속에서 북한 주민들이 무작정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즐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제자와 피통제자 사이에는 '공존관계'가 형성돼 있다고 했다.

아울러 최근에 나오는 북한 관련 콘텐츠들을 통해 남한 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이전 남한에서 만들어진 북한 관련 콘텐츠는 '반공', '멸공', '남북대결'이 주제였다"면서 "최근 나온 콘텐츠들은 북한 독재사회의 면모는 보여주되 내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발전만 못 했을 뿐이지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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