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영의정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불렸다. 줄여 영상(領相)이라 했지만, 상상(上相) 수규(首揆) 원보(元輔)라고도 칭했다. 집안에서 영의정이 나면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었다. 우리네 족보에서 많은 수의 중시조가 바로 영의정이다.
그러나 높이 오른 용은 후회할 일이 있다지 않는가. 주역의 항룡유회(亢龍有悔)다. 역대 영의정의 말로가 모두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 광해군 때 영의정이었던 박승종은 인조반정으로 아들과 함께 자결했다. 조선 최후의 영의정인 김홍집은 거리에서 피살됐다. 이처럼 정변을 당해야 후회막급 최후를 맞이하는 건 아니다.
영의정의 다른 이름은 ‘흉년 모가지’였다. 가뭄이 들면 왕이 직접 나서 기우제도 올리지만, 그렇다고 항상 하늘이 감동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흉년이 들면 백성은 “왕이 부덕해 하늘이 노한 것”이라 본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인데, 백성의 흉흉한 마음을 달래야 하지 않겠나. 수습하는 방법은 영의정을 교체하거나 심한 경우 파직의 모양새를 갖춘다. 노리는 건 ‘왕은 후덕한데, 영의정이 잘 보필하지 못해서 흉년이 들었다’는 항간의 소문이다.
이렇게 영의정이든, ‘넘버 투’든 피라미드 구조의 궁극적 꼭지점이 아닌 이상 항상 자리보전이 위태롭다. 현재로 보면 국무총리쯤인데, 실권도 없고 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지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흉년 모가지’ 대신 ‘국면전환 모가지’쯤이고, 그나마 삼권분립으로 그 권한이 조선시대만 못하다. 그런데도 그 자리를 탐하는 것은 왜일까.
혹시 이런 열망의 근저에 ‘무늬만 삼권분립’이 자리하는 것은 아닐까. 삼권분립은 말 그대로 국가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의 셋으로 나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는 제도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어떤가. 입법 권력이 행정권력과, 사법부가 행정부와 서로 견제를 통해 권력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실제 그렇다면 입법부와 사법부에서 출세한 인사들이 행정부 자리를 힐끔거릴 일은 없지 않겠는가.
민주주의의 요체인 삼권분립으로 보면, 어쩌면 우리의 DNA에는 견제와 균형의 개념이 새겨져 있는지 모른다. 최소한 70년대 이후 온 사회의 여가문화를 점령한 고스톱으로부터 그 정신을 배양했을 수 있다.
우선 기록경기를 제외하고 세계 어디에 셋이 대결하는 게임이 있나. 둘이 자웅을 겨루거나 두 편으로 나뉘어 승패를 가리는 게 모든 게임의 규칙이다.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다. 바둑도 ‘반 집’이 있고, 장기도 점수제가 도입됐으며, 축구도 승부차기를 한다. 야구도 국제경기에선 ‘승부치기’가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빅’이 없다. 예전 바둑에 반 집 승부가 없던 시절, ‘빅’이 나오면 동네잔치를 벌였다. 공동 우승인 셈인데, 그나마 그 때가 이악스러움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고스톱은 애초에 ‘빅’, 속된 말로 ‘나가리’를 추구한다. 한 명이 점수를 내려 하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두 명이 뭉친다. 암묵적으로 앞서가는 자를 공동 견제한다. 바로 ‘솥발과 같은 형세’다. 솥발(鼎)은 세 개인데, 하나가 짧거나 길면 기울어지거나 쓰러진다. 서로 높낮이가 같아야 균형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고스톱이야말로 ‘삼권분립’ 정신의 모태가 아닌가. 더불어 균형과 견제를 통해 ‘아생살타(我生殺他)’의 살벌함보다는 함께 어깨동무하는 ‘공생공영(共生共榮)’을 추구하는 게임인 것이다.
삼권분립은 말 그대로 국가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의 셋으로 나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는 제도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어떤가. 입법 권력이 행정권력과, 사법부가 행정부와 서로 견제를 통해 권력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솥발 같은 형세를 두 글자로 줄이면 바로 ‘정립(鼎立)’이다. 이때 솥을 국가권력이라고 하면, 세 솥발은 입법 사법 행정권력쯤이다. 이 솥발은 서로 멀리 떨어져야 솥이 안정을 이룬다.
만일 어느 권력 한쪽이 길거나 짧으면, 국가권력의 틀도 기우뚱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행정권력이 입법과 사법까지 손아귀에 넣으면, 결국 솥발이 넓게 자리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한군데로 모이게 되면 바로 팽이와 같은 형상이 된다.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지 않으면 곧바로 쓰러지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고스톱을 치면서 부지불식간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몸에 익혔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 정치는 왜 그렇지 않을까.
물론 고스톱에서 가거나 멈추는 것은 그야말로 자유다. 다만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다. 자칫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면, ‘독박’이란 견제장치도 있다. 그래서 노련한 게이머들은 ‘3점’이 목표다. 정말이지 삼권분립이 팽팽히 정립한 것이다.
견제와 균형이 고스톱의 몸이라면 자유와 평등은 본디 정신이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한다. 이 오묘한 경기의 발원시기는 정확하지 않은데, 대체로 1970년을 전후해 생성된 것으로 본다. 당시 사회 상황은 군부독재가 계속되면서 3선개헌에 이어 유신헌법으로 체육관 대통령이 등장하는 시기다. 이때 권위주의 군사독재에 염증을 느꼈음직한 어떤 선각자가 ‘화투’에 전혀 새로운 경기방식을 도입한다. 바로 기존의 고착화된 신분제를 타파하고 민초와 민중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규칙으로 게임화한 것이다.
이때까지 화투는 민화투나 육백 삼봉 등이 보통이었다.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신분제 계급사회를 반영한 것이었다. 광(光)은 20점, 소위 ‘열끗’은 10점, ‘띠’는 5점이다. ‘피’는 그냥 ‘빵점’이다. ‘약’을 할 때나 보탬이 되는 그야말로 ‘흑싸리껍데기’다.
하지만 고스톱은 누구나 알듯이 ‘피’가 가장 중요하다. 10장만 모이면 점수가 된다. 여기서 피는 민초이며, 민중이다. 평소 천대하다 선거철에나 알아주는 듯하지만, 그나마 막걸리에 고무신만 주면 알아서 찍어주는 투표기 쯤으로 여기던 민초가 아니던가. 그러던 민초가 여럿이 모여 결속하면 힘을 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일정 숫자의 민초를 확보하지 않으면 ‘피박’을 쓰게 된다. 그야말로 4·19보다 혁명적이며, 5·16보다 파격적이지 않은가. 바야흐로 민초와 민중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비록 네모 난 화투 판이지만.
더구나 이념에도 너그러웠다. 해방공간에 6·25까지 겪으며 과연 이념이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방에선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 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이념 과잉이 아닌가. 그래서 ‘어깨 띠’에도 일정한 지분을 줬다. 같은 색깔 석 장이 모이면 ‘3점’을 인정해 준다. 진보도, 보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흑색분자도 모두 말이다.
그러나 ‘열끗’은 미웠다. 과거 지주의 눈치나 살피며 소작인을 괴롭히던 ‘마름’ 정도라고나 할까. 지주보다 더 얄미웠다. 그래서 5장이 모여야 1점이 나게 했다. ‘열끗’은 모두 8장이므로, 3점이 되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이름하여 ‘멍청이’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고스톱은 이토록 파천황(破天荒)적 운동성을 지녔지만, 그래도 ‘광(光)’을 인정하는 포용력과 관대함도 지니고 있다. ‘광’도 3장이 모이면 ‘3점’을 준 것이다. 다만 고스톱 이전시대에 가장 위세를 뽐냈던 ‘비광’만은 핸디캡을 주었다. 이것이 포함되면 2점으로 한 것이다.
어쩌면 80년대 민주화의 물결은 고스톱을 통한 민중의식의 함양이 기여한 바 크다고 하겠다.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중친화적이 된 거다. ‘피박’을 쓰다 보면 의식의 밑바닥에 ‘피, 민초, 민중’이 자연스럽게 각인된다. 이런 고스톱도 시대상황에 따라 게임 규칙이 조금씩 변화한다. 예를 들어 민주화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을 경계해 ‘싹쓸이’에 덤을 주는 ‘전두환 고스톱’이 나왔고, 유사하게 노태우나 김영삼도 게임방식에 추가됐다.
고스톱은 한편 ‘경제민주화’의 원형(原型)이기도 하다. 모두가 사이 좋게 ‘빅’을 추구하지만, 그럼에도 부(富)의 편향이 발생한다. 솥발 같은 견제에도 불구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종종 나오는 것이다. 이럴 때는 ‘개평(皆平)’이 있다. 모두가 공평하게 살자는 뜻인데, 바로 초과이익을 환수해 고루 나누는 공동체 정신이다. 요즘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의 본 모습이 아닌가.
삼권분립 정신의 모태이자, 민주화 동력이고, 경제민주화 원형인 고스톱이 요즘은 사라진 듯하다.
아마도 언제부턴가 고스톱이 ‘한탕주의’로 흐르면서 민중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원래 없었던 ‘고도리(새 다섯 마리)’가 성행하고 ‘조커’에 ‘동물고스톱’까지 생겼다. 크게 ‘한방(한탕)’을 노리는 것이다.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민주화가 정착된 이면에 천박한 천민자본주의가 스며든 것이다. 서서히 민중성을 상실한 고스톱은 서민의 손에서 떠나고 말았다. 양극화의 그늘에서 눈물을 훔치는 서민들에게 ‘한탕주의’는 언감생심이다. 한탕도 주식이나 땅투기를 하는 가진 사람들이나 꿈꾸는 것 아니겠나.
그렇더라도 진정한 민주주의, 민초가 주인이 되는 세상에 대한 염원이 사그라질 수는 없다. 어떤 왕도, 어느 절대 권력자도 민심을 영원히 억누르거나 거스를 수 없다. 당(唐)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부득고원초송별(賦得高原草送別)’ 에서 ‘언덕 위의 우거진 풀/해마다 한번 시들었다 무성해지네/들 불을 놓아도 다 타지 않고/봄바람 불면 다시 돋아난다네’라고 읊었다. 그렇다. 민초들의 면면한 의지는 한때 시들어도, 항상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결국 탕무(湯武)혁명도 ‘하늘은 백성이 보는 것으로 보고, 백성이 듣는 것으로 듣는다(상서 태서 중)’는 개념에서 비롯된 아닌가. 그렇기는 하지만 민심의 정체는 성현들도 알기 어려웠던가 보다. 중국의 탕(湯)왕 시대의 재상 이윤(伊尹)도 ‘아, 하늘을 믿기 어려운 것은 그 명(命)이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고 한탄한다. 이른바 천명무상(天命無常)이다. 공자도 임종할 때 “태산이 무너진다! 기둥이 부러진다! 철인(哲人)이 죽는다!”고 탄식하지 않았던가.
며칠 후면 설날이다. 설날 민심이 일년 민심이란 말도 있다. 더욱이 이번 설날은 꽁꽁 언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雨水)이다. 부디 시들고 타 들어간 민초 가슴에 촉촉한 봄비가 내리길 빈다.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