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의 연예계 사사건건] '관상' vs '왕의 얼굴', 누가 거짓말 하나

영화 관상과 KBS2 왕의 얼굴의 저작권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주피터필름 제공

[더팩트ㅣ이건희 기자] 영화 '관상'과 KBS2 '왕의 얼굴'의 저작권 다툼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관상'의 제작사와 KBS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면서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분명 누군가 한 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관상'과 '왕의 얼굴'의 싸움은 지난 25일 시작됐다. '관상'의 제작사 주피터 필름은 '왕의 얼굴'을 준비하고 있는 KBS와 KBS 미디어를 상대로 제작과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왕의 얼굴'이 '관상'의 독창성을 모방하고 표현 방식을 그대로 도용한 것은 저작권 침해행위라는 게 그 이유다.

KBS는 즉각 해명에 나섰다. KBS 드라마국은 같은 날 오후 "두 작품은 인물과 시대 배경, 플롯과 갈등 구조 등이 전혀 다른 드라마이며 영화 제작사로부터 드라마 기획안을 받거나 구체적인 제작 협의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상' 측은 "표절과 부정경쟁행위를 중단하라"며 "원저작물에 다른 이야기를 추가하고 멜로가 더 들어간다고 하여 표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재반박했다. 특히 "MBC와 드라마 제작 및 방송에 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KBS의 '왕의 얼굴' 편성 확정 보도가 나간 뒤 제작 협상이 모두 중단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양 측의 주장을 종합하면 서로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 두 작품 모두 관상이라는 소재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는 모든 쟁점에서 엇갈린다.

관상을 소재로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왕권 다툼을 그린 관상의 한 장면. 왕의 얼굴은 시대가 선조와 광해군 때로 바뀌었지만 역시 관상을 주요한 소재로 다룬다. / 영화 관상 스틸

◆ 쟁점1. 관상 소재, 저작권 보호 대상일까

'관상'과 '왕의 얼굴'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두 작품의 유사성이다. '관상'은 수양대군과 김종서를 둘러싼 왕권 다툼에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 분)이 얽히는 이야기를 다룬다. '왕의 얼굴'은 16년 동안 폐위와 살해 위협에 시달린 광해군이 관상을 무기로 왕이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관상' 측은 "조선 시대 왕위 다툼에서 허구의 관상가가 중요하게 등장하고 주요 등장인물을 동물 형상으로 빗대는 점, 침을 이용해 인물의 관상을 변형하는 장면 등은 표절에 해당한다"고 알렸다.

그러나 KBS는 "'관상' 이전에도 관상학은 흥미로운 소재였고 관련 서적도 많았다. 관상을 이용해 난관을 극복하거나 얼굴을 바꾸는 행위는 전형적인 장면으로 저작권 보호 대상인 표현이 아닌 아이디어"라고 맞섰다. 또 "영화의 성공으로 소재가 주목을 받은 건 맞지만 소재에 대해 영화사가 독점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표절 여부는 법정에서도 가리기 힘든 부분이다. 양측은 우선 제작과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재판부가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관상이라는 소재와 유사한 장면들이 등장하는 부분을 저작권 침해로 판단할지 아니면 전형적인 표현 방식의 일종으로 인정할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KBS와 관상의 제작사 주피터 필름은 2년 전 드라마화 협의를 나눴으나 무산된 바 있다. / KBS 로고

◆ 쟁점2. KBS와 주피터 필름, 드라마 기획안 주고 받았나?

KBS와 주피터 필름 사이에 드라마 진행 협의가 있었는지도 양측의 말이 다르다. 주피터 필름은 "영화를 준비하던 2010년 12월부터 원소스멀티유즈(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포맷으로 활용하는 방식) 전략으로 소설과 드라마 제작 준비를 동시에 진행했으며 2012년 KBS 미디어와 협의하던 당시 시나리오와 드라마 기획안을 넘겨줬다"고 주장한다.

또 "드라마 작가로 이향희 작가를 언급했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다"며 "당시 언급된 이향희 작가가 '왕의 얼굴' 대본을 집필하는 등 드라마화 논의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그대로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KBS는 "드라마화 제안을 받은 적은 있지만 기획안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관상' 측에 알린 바 있다"고 반박했다.

'관상' 측은 최근 "드라마화 논의와 기획안 전달에 관한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재판 중에 공개할 것으로 알려진 이 증거가 어떤 내용이냐에 따라 법정 다툼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협상을 진행한 적은 있지만 무산된 것만이 팩트다. 관건은 '관상' 제작사가 KBS에 드라마화 기획안을 전달했느냐에 달렸다.

KBS는 올해 방송을 목표로 왕의 얼굴 캐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성재 조윤희 서인국(왼쪽부터) 등이 주연 물망에 올랐다. / 최진석 남윤호 기자, 더팩트 DB

◆ 쟁점3. 먼저 방송하면 끝?

'왕의 얼굴'이 예정대로 올가을 방송된다면 MBC와 제작 논의를 진행하던 '관상'이 타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9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드라마 제작을 노리던 '관상' 측으로서는 '왕의 얼굴'은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이다.

인물과 배경은 다르지만 같은 조선 시대에 관상이라는 소재로 비슷한 장면들이 등장한다면 뒤에 방송하는 작품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양측 모두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한 방송 관계자는 "완성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소재가 같고 이미 다른 작품에서 봤던 장면이 나오는 드라마를 어떤 시청자가 또 보겠느냐"며 "좋은 콘텐츠를 놓고 방송사와 영화사가 서로 다투는 게 안타깝지만 언젠가 한 번은 거쳐야 할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또 "법정에서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어느 쪽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알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쉽게 끝나지 않을 싸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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